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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아 Dec 31. 2022

올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디자이너의 사적인 2022년 회고

2022년을 보내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단연 섭섭함보다는 후련함이다. 후회가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 뒤 맞는 후련함이라면 참 좋을 텐데. 오히려 일과 개인적인 고민에 휩싸여 하루하루 집중하기 힘든 날이 많았다. 이제는 새해라는 이름을 빌려, 괴로웠던 올해를 보내주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서 후련하다. 아쉬움이 남는 만큼 기록으로 더 남겨두고 싶다. 내년에는 이 글을 콧방귀 뀌면서 읽을 거니까!






보험: 나의 일에 진심이었나?


[5년 차 디자이너가 이직한 이유] 편에서 이직했다는 곳은 보험회사다. 보험이라는 개념조차 와닿지 않았던 내가 보험 회사에서 일한 지도 1년이 넘었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과 패션을 다루었던 이전 직장들과는 다르게 보험은 내가 좋아하지도, 심지어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는 분야다. ‘전혀 모르는’만큼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보겠다는 무모한 도전 정신이 생겨 이직을 결정했다. 그러니까 일 년 내내 보험이 머릿속을 지배할 수밖에!





‘보험’을 둘러싼 일하는 고민이 끊이지 않는 한 해였다. 보험의 본질부터 사업 구조, 보험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면 좋을지, 우리 회사의 보험은 어떤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지 등등… 물론 1년 만에 결론내서 보여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재직 1년이 넘어가니까 머릿속에서 흐릿했던 ‘보험’이라는 존재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아직 속도를 낼 수는 없지만 트랙 위에서 달리는 건 지금부터 시작이랄까!


보험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며 보낸 올해를 돌아보면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보험이 나의 일이 된 지금, 나는 내 일에 진심이었나? 용어부터 어려우니까, 보험업계에서 나는 신입이니까, 디자이너가 이것까지 알아야 하나-라는 안일한 생각에 갇혀 성장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2023년에는 보험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일의 성과로 만들고 싶다.



내가 성공해서 이 판 뜬다…





요가: 조바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작년 봄부터 다닌 요가에 제대로 몰입하게 된 건 올해부터다. 이제는 요가가 나의 행복이자 사랑이자 종교…라고 말하고 다니는 지경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요가에 빠지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모두 조바심 때문이다! 조바심은 내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나를 지배한다. 그래서 늘 조바심이 찾아오기 전에 일을 끝맺거나 중간 성과라도 보려고 애쓴다.


그런데 최근 시작한 일들은 모두 단기간에 마무리할 수 없고 2~5년의 중장기 계획 아래에서 움직여야 한다. 손에 잡히는 결과물 없이 1주일, 3개월, 6개월이 넘어가니 여지없이 조바심은 나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아! 모르겠다!’ 외치며 요가로 도망쳤다. 다행히 요가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아무리 막강한 조바심도 요가 앞에 속수무책! 적어도 정체기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번에도 조바심이다. 그놈의 조바심! 일에 대한 조바심은 요가로 극복했다고 자신했는데, 요가에도 조바심이 생기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 돌파구가 없어 그냥 하던 요가를 계속했다. 낮에 회사에서는 햄스트링 통증에 시달렸고 밤에는 허리 통증에 괴로웠지만 요가를 멈추지 않았다. 몸이 변하는 과정이니 지켜보자는 선생님 말을 믿고 기다렸다. 다행히 몇 달 동안 지속됐던 통증의 정체는 체형이 변하고 근육이 커지기 위한 성장통이 맞았다. 통증뿐이었던 정체기를 잘 보낸 덕에 요가는 하루의 가장 즐거운 일이 되었다.


조바심을 피해 도망가는 건 해결책이 아니었다. 결국 조바심은 특정 일에만 국한된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나의 뜻대로 되지 않거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때마다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인 셈이다. 여전히 조바심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요가가 내게 알려준 것처럼, 조바심을 제대로 마주하고 잘 달래보고 싶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기다리겠다고.





선택: 삶의 방향성이 필요할 때




올해 만났던 선택지들은 유독 고민이 길고 선택이 어려웠다. 차라리 정해진 답이 있다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재 진행형인 고민들이 많다. 하나만 얘기해 보자면, 복학을 언제 할 것인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대학 졸업을 미루고 6년째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다. 1, 2년도 아니고 6년이라니! 더 이상 미룰수록 졸업이 힘들어질 뿐이라는 고민을 늘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 해도 똑같을 졸업이라는 결과만을 위해 현재 하던 일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멈춰야 한다면? 기회비용이 아깝기도 하다.


일하면서 얻는 물리적, 정서적 이득을 최대한 지속할 것인가? 복학해서 졸업을 준비하며 시간을 새롭게 활용할 것인가? 어디에 더 큰 가치를 두는지, 어떤 1년을 보내고 싶은지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선택의 문제다. 그래도 6년이나 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건 선택을 위한 삶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하면서 브랜드 전략과 디자인의 기준이 되는 기업의 철학을 한참 들여다보는 편이다. 기업의 철학은 브랜드가 여러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지켜야 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 담기니까 말이다. 이제는 나의 삶에도 명확한 철학과 방향성이 필요한 시기다.





그렇다고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들을 모두 계획하고 통제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처음 휴학을 하고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몰랐다. 5년 후에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을 줄이야! 지금까지는 경험의 카테고리를 늘려왔다면 앞으로는 경험의 레이어를 쌓고 싶다. 그러면 복학이든 다른 문제든 자연스럽게 답이 좁혀지지 않을까 싶다. 아니,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올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요가는 내가 선택한 보험이 되었다! 뭔가 글의 마무리가 이상한 것 같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글 하나는 올리겠다는 조바심에 쫓겨서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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