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낯선 모습들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것이 당연해지지 않는 것. 그게 낯선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신선함일 것이다. 누군가 핀란드의 자연환경을 묻는다면, '수평선'이라고 답할 것 같다.
내가 지냈던 도시는 오울루(Oulu), 핀란드의 중부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북극선 거의 바로 아래에 있다. 4월 말경,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을 이용해서 최남단에 있는 수도 헬싱키(Helsinki)로 나홀로 여행을 떠났다. 핀란드는 남북으로 길쭉한 나라이기에 오울루에서 헬싱키까지는 거리가 꽤 있다. 기차 타고 편도로 6시간은 걸리는 거리다.
나는 기차여행을 퍽 좋아한다. 바깥 풍경을 보면서 멍 때리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보기도 한다. 헬싱키로 떠나는 아침, 손수 샌드위치를 싸서 챙겨갔다.
기차를 탄 지 2시간 쯤 지나고, 이건 뭔가 좀 허전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에 보이는 것이라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평선과 그 위에 촘촘하게 박힌 침엽수들 뿐이고, 차 타는 내내 산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때까지 핀란드에서 지내면서 산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나라는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도 산을 쉽게 볼 수 있다.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든, 나무까지 속속들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서든. 그런 환경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어떻게 산이 이렇게나 없을 수가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혼자 살짝 놀랐다. 결국 6시간 동안 똑같은 풍경을 보며 헬싱키에 도착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대개는 우리나라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에 신기함을 느끼고 놀라곤 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험도 하게 된다. 지금껏 당연하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곳에서는 당연하게 없을 수도 있다는 것.
헬싱키로 가는 6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은 여태껏 무감각하게 소유하고 있던 것들에 대한 감각을 깨우는 소소하지만 값진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