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어떤 기분으로 살고 있을까?
최근까지 복용했던 약이 있다. 호르몬을 조절해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데, 요놈의 탓일까? 아니면 요지경 같은 사회생활의 스트레스 덕분일까? 내 감정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요동친다. 기쁘다가 슬프다가, 즐겁다가 우울하다가, 신났다가 무기력하다가. 사실 약의 탓이라고 믿고 싶다. 그게 아니면 내가 마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놈 같으니까. 특별한 이유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으니까. 아 왜, 그거 있잖아요? 흔히 말하는 조울증 같은 거.
하지만 나는 지극히 정상이다.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주변 사람을 피하는 것도 아니며, 방구석에 틀어 박혀 고개를 무릎에 처박고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나름 취미도 있고, 모임을 주도하며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에너지가 충만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 감정의 소용돌이는 회전을 멈출 줄 모른다.
사실 이러한 기분은 단순하게 몇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사전적 단어로 규정지을 수 없다. 그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세분화되어 있다. 색이 뚜렷이 구분된 크레파스보다는 가시광선 스펙트럼에 가깝다. 한정된 신체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것처럼.
아마도 나와 같은 사람이 꽤나 많을 것이다. 기분이 애매모호 한 그 상태로의 머무름. 화가 나거나 슬픈 것은 아니지만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래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보다는 여러 사람을 두루두루 만난다. 휴식을 취하고자 홀로 집에 있을 때면 고립된 분위기가 되레 나를 감정적으로 얽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일 테지. 더군다나 나의 불완전한 상태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장면을 상상할 때면 마치 할복하는 것만 같다.
"기분이 애매모호 한 그 상태로의 머무름"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부터 감정적 공감, 그것도 아니면 동정이라도 얻기 위해. 매서운 물살에 수천번, 수만 번 휩쓸리고 또 휩쓸려 반질반질해진 조약돌들끼리 모여 고무되기를 기대한다. 가냘픈 손가락으로 저항의 홍기를 휘날린다.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마음속이 약간은 개운해지니까.
우리 모두 요동치는 감정이란 놈에 솔직하자. 행여 그것이 나의 알몸을 드러내는 짓일지라도, 수치심에 못 이겨 몸이 부르르 떨릴지라도 감행하자. 솔직한 감정을 들춰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물며 얼굴을 대면하지 않은 상태라도 말이다. 그저 목청에서 진동을 울려 토해내면 다인 것 같은 하찮은 행위는 맨손으로 정복해야 할 절벽같이 높다. 열없고 민망하다. 벌거벗은 것 같은 기분이다.
감정이란 놈은 봉투에 쓰레기 담듯 꾸역꾸역 억누르다 보면 기어이 삐져나오거나 터지기 마련이다. 구겨지거나 찢어진 감정은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더 흉측하게 망가질 뿐이다. 오랫동안 안에서 썩은 감정이 이내 역한 냄새를 발산하고 말 것이다. 억눌려 변한 감정은 결국 날을 세워 다른 사람을, 또 나 자신을 다치게 한다.
요동치는 감정이란 놈에 솔직하자. 그것이 설사 어떤 놈인지 정체를 알 수 없을지라도 일단 뱉어보는 것이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내 모습이 두렵더라도 느끼고 있는 그대로, 이렇다 저렇다 서둘러 단정 지을 필요 없이 우선 꺼내어 보자. 꺼내어 보면 그때 그게 뭐였는지 알 수 있을지도. 알고 나면 조금은 진실되게 대할 수 있을지도. 솔직하고 나면 나의 초라함을, 수치심을 조금은 견뎌낼 수 있을지도.
요동치는 감정이란 놈에 우리 한번 솔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