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관제사의 하루

#때로는 아찔한 이야기

by 동경

혹시 ‘스위스 치즈 이론(Swiss Cheese Model)’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여러 산업의 안전관리 분야에서 위험을 분석하고 관리할 때 사용하는 모델입니다. 만화영화에 나올 법한(특히나 "톰과 제리" 라는 만화영화를 아신다면)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를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이 치즈의 한쪽 면에 젓가락을 찔러 넣는다고 상상해 볼까요? 그 젓가락이 여러 겹으로 쌓인 치즈의 구멍만을 절묘하게 통과해 반대편으로 나올 확률은 얼마나 될 것 같나요? 여기서 젓가락은 ‘위험 요소’의 흐름이고, 치즈의 각 슬라이스는 ‘안전장치’, 그리고 구멍은 그 안전장치의 ‘취약점’입니다. 즉, 우리가 만든 안전 시스템은 여러 계층의 방어 체계로 이루어져 있어, 하나의 취약점이나 한 번의 실수만으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스위스 치즈 이론을 설명해주는 그림. 이처럼, 한 단계에서의 취약점 또는 사용자 실수만으로는 위험 요소의 실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는 항공 분야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조종사와 관제사, 각종 첨단 장비, 그리고 빼곡하게 짜인 규정과 절차 등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위험을 막아내는 튼튼한 치즈 조각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모든 사건과 사고는 이 모든 치즈의 구멍을 기적적으로 통과하는 ‘만의 하나’의 경우에 발생합니다. 문제라고 한다면, 하루에도 수백 대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에서, 그 ‘만의 하나’는 생각보다 자주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죠. 이번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모든 구멍을 통과하던 위험을 막아낸, 마지막 한 장의 치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4. 저거 어디가는거에요?


제가 이전에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대부분의 비정상 상황은 모든 것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발생합니다. 아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는,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미세한 조각 하나로도 큰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날 저녁의 관제탑은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관제탑에 서서히 스며드는 노을이 치열했던 공기를 차분히 다독이고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유달리 경험 많은 팀장급 관제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지휘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휘자가 여러 명이었지만, 공항 악단이 불협화음을 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장 큰 항공기들이 머무는 1번 주기장에 주기 중이던 대한항공의 A330 항공기가 출발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간략히 설명한 전경. 대한항공이 31활주로 방향으로 가기 위해 남동쪽으로 준비를 마친 모습.


첫 번째 치즈구멍, 조종사: 보통 대형기 조종사들은 충분한 비행시간과 경험을 갖고, 기종전환 훈련을 통해 대형기 조종사로 승급한 베테랑들입니다. 베테랑임이 분명한 조종사가, 활주로 31 사용을 요청했습니다.


두 번째 치즈구멍, 허가중계 관제사: 역시 베테랑이었던 관제사는 막힘없이 31 활주로 사용 허가와 함께 항로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세 번째 치즈구멍, 지상 관제사: 또 다른 베테랑 관제사는 약속된 수순처럼 항공기의 머리를 남동쪽으로 돌려 푸시백을 지시하고, 31활주로 사용을 위해 E3 유도로로 택시를 지시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싱싱한 신입이었던 저는 뒤에서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완벽해서, 세 장의 치즈에 뚫린 구멍이 정확히 일직선으로 정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위험이라는 젓가락이 소리 없이 세 개의 구멍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때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막 관제탑에 올라온, 비교적 경력이 짧은 선배님 하나가 올라오자마자 유도로를 따라 헤엄치는 A330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편견도, 익숙함도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한 의문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 쟤 지금 어디 가요?"


그 한마디에 관제탑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그리고 이내 그의 손끝이 향한 거대한 동체로 옮겨갔습니다. 짧은 정적. 그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서 젓가락이 네 번째 치즈에 부딪혀 ‘푸욱’ 하고 꽂히는 소리가 들렸을 겁니다. 곧바로 지상 관제사의 다급한 외침이 정적을 갈랐습니다.


"KALXXXX, HOLD POSITION! HOLD POSITION RIGHT NOW!!"


A330이 향하던 길목에는 공군의 공수 취급소가 있었습니다. 그 건물 때문에, 해당 경로는 날개폭이 넓은 D급²⁾ 항공기는 지나갈 수 없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A330은 D급의 항공기였고, 만약 그대로 진행했다면 인명피해는 없었을지언정 수백억원을 훌쩍 넘는 푸른 고래의 지느러미가 뚝 부러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겁니다.

만약 그대로 진행했다면, 공수취급소에서 A330의 날개는 반드시 부러졌을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활주로 31을 요청한 조종사도, 허가를 내준 허가중계석의 관제사도, 푸시백부터 택시까지 지시한 지상 관제석의 관제사도, 모두가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녁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너무나 자연스러운 교통의 흐름이, 노련한 전문가들의 인지를 잠시 마비시켰던 것입니다. 모두가 스스로를 베테랑이라고 자부하는 자기확신이, 어느 누군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무의식 속에서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 곳에 있던 모두가 익숙함이라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만약 그 꿈을 깨우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날 사고를 막은 것은 정교한 시스템이나 빼곡한 규정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막 저녁을 먹어서 푸짐한 배를 두드리며 행복함에 젖어있던 관제사.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대한 실수의 고리를 끊어낸 것은, 경험 많은 베테랑이 아닌, 갓 저녁을 먹고 올라와 그 흐름에 편승하지 않았던 젊은 관제사의 ‘낯선 시선’이었습니다.

필자는 계단을 올라와 관제실에 진입했을 때 바로 보이는 정면의 시선이 해당 위치를 향해있던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위기는 모두가 방심할 때, 모두가 전문가라고 자부할 때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위기를 발견하는 것이, 정해진 흐름에 물들지 않은 의외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삽니다. 익숙함의 강을 따라 편안히 흘러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강둑에 서서 우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혹시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삶이라는 항로에서, 너무나 익숙해서 더는 의심하지 않게 된 ‘보이지 않는 장애물’은 없으신가요? 그리고 만약 있다면, 당신의 곁에는 “어? 지금 어디 가요?”라고 물어봐 줄 그 낯설고도 소중한 시선이 존재하나요?


¹⁾ 푸시백(Pushback): 주기장에 탑승교와 연결되어 있는 항공기는 스스로 후진할 수 없으므로, '토잉카(Towing Car)'라는 특수 차량이 항공기를 뒤로 밀어 유도로까지 이동시키는 절차를 말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항공기는 스스로 지상 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됩니다.


²⁾ 항공기 등급 분류 코드(ICAO Aerodrome Reference Code):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공항 운영의 편의를 위해 항공기를 크기에 따라 분류한 코드. **D급(Code D)**은 날개폭(Wingspan)이 36m 이상 52m 미만인 항공기를 지칭하며, 에어버스 A330, 보잉 767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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