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로는 아찔한 이야기
혹시 MAY-DAY 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수많은 훈련과 경험으로 다져진 기장님들조차 초연하게 맞이할 수 없는 공포적인 상황을 마주하였을 때, 그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마지막 신호입니다. 그것은 조종사라면 평생 입에 담지 않기를, 관제사라면 제 주파수에서만큼은 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악몽과도 같은 선언이지요. 경험 많은 관제사더라도, 저 말을 듣고 마냥 침착할수 있는 제 동료는 얼마나 될까요? 저도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제 근무석의 주파수로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근무하고 있던 상황에서 펼쳐진 가장 공포적인 순간에 대해 짤막히 풀어보는 시간으로 하겠습니다.
#3 MAY - DAY!!
어느 봄 오후 다섯 시 경. 해가 서서히 땅으로 가라앉으며, 덩달아 온 몸을 조이던 긴장감도 서서히 내려앉는 시간입니다. 관제탑의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더없이 평화로웠습니다. 햇살은 부드럽게 스며들어 관제 장비들 위로 내려앉았고, 활주로를 오가는 몇 없는 비행기들의 움직임은 마치 잘 짜인 악보 위를 미끄러지는 음표처럼 익숙하면서도 안정적입니다. 심지어는 허가중계석에 앉아있던 저는 부서지는 구름을 응시함으로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조용히 침전하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고요한 순간이면, 저와 동료들이 감내했던 오늘의 치열함이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일상의 표면을 깨뜨리는 것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누군가에게 던져진 돌멩이입니다. 문제는 관제사라는 개구리가 맞는 돌멩이는 대부분 비행기라는 거대한 바위덩이라는 것이지요. 활주로 시단에서 4마일 지점, 최종 접근 중이던 항공기의 담담한 착륙 복창.
"RUNWAY 07, WIND 080 AT 6. CLEAR TO LAND. TWB xxx"
그리고 불과 몇 초 뒤, 그 평온을 산산조각 내는 세 마디의 단어가 로컬 관제석의 스피커를 찢고 들어왔습니다.
“MAYDAY, MAYDAY, MAYDAY.¹⁾ TWB 화물칸에 화재 경보입니다. 지원 바랍니다."
그 선언은 적어도 제가 아는 선에서는 가장 짧으면서도 파괴적인 문장입니다. 관제탑 안의 모든 소음을 증발시키며 정적이 내려앉습니다.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감각. 저를 포함한 몇몇 동료들의 눈빛이 허공에서 초점을 잃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시도하고 반복했던 우발 계획²⁾과 비상대응절차가 안개등처럼 불규칙하게 깜빡였지만, 몸은 현실감을 잃은 채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듯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의 정적은, 어쩌면 저희의 미숙함이 만들어낸 여백이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찰나의 판단이 수백 명의 안위와 직결되는 이곳에서 그 순간은 영원과도 같아서, 지금 글로 표현하는 이 순간에도 반성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게 합니다.
그때였습니다. 평소에는 장난기 가득한 농담과 함께 배부른 아저씨처럼만 보였던 선임 팀장님. 늘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싸구려 믹스 커피 향으로 하루를 측정하는 듯 보였던 선임 팀장님의 나직한 목소리가 그 공백을 채웠습니다.
“뭐하고 있어? 정신 차려.”
호통이나 다그침이 아니었습니다. 혼돈의 바다에 빠진 저희에게 던져진, 묵직하고 단단한 밧줄이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멀쩡한 악보에서 불필요한 쉼표가 되어 침묵하던 우리를 다시 관제사로 만들었습니다. 교범 속 활자로만 존재하던 문장들이 생명을 얻어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뀌기 시작했지요. 로컬 관제석에서 근무하던 팀장님은 곧바로 활주로를 비우며 소방대의 출동을 요청했고, 지상관제석에서 근무하던 선배는 비상벨을 누름과 동시에 비상주파수를 통해 다른 항공기들에게 상황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접근관제소와 협조하여 공항 주변 항공기들을 통제하며 새로운 하늘길을 열어내고, 비상을 선언한 항공기의 출발지와 목적지, 호출부호와 탑승객 수 등의 필요한 정보를 유관기관에 전달했습니다. 시뮬레이터³⁾가 없어서 상상으로만 훈련된 몸의 기억이 결국 공황 상태의 머리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외침은 경보 장치의 오작동이 빚어낸 해프닝이었습니다. 비록 사실 확인을 위하여 해당 항공기에 약간의 점검과 지연이 발생했지만, 그 누구의 인연도 가슴에 묻거나 그리워질 일은 없었습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온몸의 긴장이 풀려나갔지만, 아드레날린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서늘한 잔상만이 남았습니다. 아마 출동했던 모든 소방차와 구급대, 비상대기 중이던 공항 내 모든 부서가 마찬가지였겠지요. 다만 만약 그것이 실제 상황이었다면, 3분마다 단두대에 목을 넣는 심정으로 일하는 저희에게 그 3초의 망설임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 팀장님은 분명 다 마신 것 같은 종이컵을 든 채 다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처음으로 그의 평온함이 무심함이나 나태함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평소에는 별 생각 없던 그 풍만하고 굽어진 등허리에서, 자신의 눈앞에 닥친 폭풍우를 온전히 통제하면서도 곁에 있는 동료의 작은 흔들림까지 놓치지 않는 그 깊이와 넓이를 느꼈습니다. 그의 침착함은 단순한 담대함이 아니라, 수많은 위기를 넘어서며 단련된 경험의 결정체라는걸 말이지요.
그의 모습은 제게 새로운 목표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절차를 외우고 따르는 것을 넘어, 어떤 돌발 상황 속에서도 함께 있는 동료들에게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수많은 경험의 나이테가 새겨진 그의 등은 제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삶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나요? 평소에는 그저 잔잔한 수면처럼 보였지만, 가장 거센 풍랑이 몰아쳤을 때 비로소 거대한 산처럼 버티고 서서 당신을 지켜준 사람이. 그리고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날, 당신의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¹⁾ MAYDAY(메이데이): 항공기나 선박이 중대하고 임박한 위험에 처해,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국제 표준 조난 신호. 조종사가 이 신호를 세 번 반복하여 외치면, 관제사를 포함한 모든 무선 청취자는 최우선으로 해당 교신에 집중하고 구조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²⁾ 우발 계획(Contingency Plan):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공항을 통제하는 관제시설에서 마련하는 매뉴얼 수준의 국지 절차입니다. 상위 규정을 기반으로, 발생 가능한 비상 상황에 대해 각 공항의 특성에 맞게 작성되며, 통상 대부분의 비상 상황은 이 계획을 준수하여 처리함으로써 해결됩니다.
³⁾ 시뮬레이터 : 제주공항은 그 규모나 교통량에 비해 시설과 환경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관제사들의 훈련을 전담하는 팀은 물론, 비상 상황이나 복잡한 절차를 연습할 수 있는 관제 시뮬레이터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주공항의 모든 관제사는 위험한 실제 상황 속에서만 경험을 쌓고 실력을 다져나가며, 오늘도 제주의 하늘을 안전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