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관제사의 하루

#때로는 아찔한 이야기

by 동경

제가 몸담은 제주공항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로 시선을 넓혀보아도, 가장 분주하고 위태로운 공항을 꼽을 때면 늘 순위권을 다투는 곳입니다. 공항의 숨통 역할을 하는 단 하나의 주활주로, 그리고 그 허리를 애매하게 가로지르는 보조활주로가 전부이지요. 그마저도 보조활주로는 짧은 길이 탓에 오직 출발용으로만 쓰일 뿐, 평소에는 제 역할을 잊은 채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다 북서풍이 칼날처럼 몰아치는 겨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홀연히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기묘한 녀석입니다.


제주공항의 전경. 07-25로 통칭되는 주활주로와, 13-31로 통칭되는 보조활주로를 볼 수 있다.¹⁾


1) 활주로의 방향은, 활주로의 끝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로 결정됩니다. 즉, 해당 활주로를 달려서 날아오른 항공기의 머리가 자북을 기준으로 어느 방향을 향해있는지에 따라 결정되지요.


이 하나의 활주로로 동이 트고 별이 잠들 때까지, 17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500대에 가까운 항공기를 소화하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평균 3분에 한 대씩 거대한 동체를 땅에 내려놓아야 하고, 바로 그 찰나의 틈을 비집고 또 다른 한 대를 하늘로 밀어 올려야 합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3분마다 무수한 생명을 태운 단두대에 제 목을 넣었다가 정확한 순간에 빼내는 일을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차라리 저의 목숨 하나로 이 모든 책임을 다할 수 있다면 오죽 좋으련만, 제 책임의 담보는 제가 아닌 수백의 생명과 그들과 거미줄처럼 얽힌 무수한 인연의 무게입니다.


잠들어 있던 보조활주로가 눈을 떠야하는 날이면, 관제탑의 공기는 한층 더 팽팽해집니다. 평소에는 지상 항공기의 통행로나 헬기의 이착륙 방향을 알려주는 안내판 노릇을 하지만, 특정 조건이 맞으면 민간 항공기의 출발이라는 중책을 나눠 맡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동선보다 두 개의 동선이 교차하는 무대가 더 복잡한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10초 남짓한 찰나의 판단으로 모든 움직임이 결정되는 이곳에서, 교차하는 두 개의 활주로는 관제사의 신경을 몇 배로 날카롭게 갈아세웁니다.


#3 바로 정지하세요!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저 보조활주로 위에서 벌어진, 관제사 3년 차의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제게 서늘한 경종을 울린 어느 순간에 관한 기록입니다.


앞서 보조활주로는 헬기의 이륙 방향을 지정하는 도구로도 쓰인다고 말씀드렸지요. 저희 공항에서는 두 활주로에 각각 항공기나 헬기를 세워두고 차례로 출발시키는 일이 일상처럼 벌어집니다. 이때 국내 관제사들의 경전과도 같은 『항공교통관제절차』²⁾에는 교차활주로에 항공기를 각각 준비시킬 때, 서로의 존재를 알리고 명확한 출발 순서를 지정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2) 항공교통관제절차 : 국토교통부 고시로, 대한민국 공역 내에서 항공교통관제업무를 수행하는 관제사들이 따라야 할 표준 업무 방식과 절차를 규정한 공식 지침입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국제 표준을 기반으로 하며, 항공기 간의 안전 분리 기준, 표준 관제용어, 이착륙 및 항로비행 절차, 비상상황 대처 요령 등 관제업무에 필요한 모든 세부 사항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관제사는 이 절차를 숙지하고 엄격히 준수할 의무가 있어, 관제사들에게는 '바이블'과도 같은 규정입니다.


07활주로에서 출발 준비중인 항공기에게는 31활주로 헬기에 관한 정보를, 반대로 31활주로에서 출발 준비중인 헬기에게는 07활주로의 항공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한다.


저의 신조는 절차와 규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저를 구원해 줄 가장 확실한 도구이자,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관제사에게 쏟아지는 책임의 화살을 막아줄 가장 단단한 방패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에도 절차에 따라 각 활주로 위의 항공기와 헬기에게 서로의 정보를 알려주고, 명확한 이륙 순서를 배정했습니다.


제가 계획한 무대의 순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먼저 내린 비행기가 주활주로를 완전히 벗어난다.

주활주로의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보조활주로의 군용 헬기가 그 뒤를 따른다.

선행 항공기가 활주로를 완전히 비켜서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활주로 위를 가볍게 훑으며 다른 장애물이 없는지 살핍니다. 지상감시레이더의 화면에서도 여타 장애물이 없음을 재차 확인한 뒤, 주활주로의 항공기를 응시하며 이륙을 허가했습니다.


"KALXXXX, RUNWAY07, WIND 030 AT 8 KNOT, CLEAR FOR TAKE OFF"


모든 항공기는 이륙 허가를 받으면, 그 허가를 복창(READ BACK)하여 교차 확인을 하고 활주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 헤드셋으로 돌아온 것은 명료한 복창이 아닌, 마구 엉킨 실타래처럼 난잡한 소음의 뭉텅이였습니다. ‘RADIO JAMMING’³⁾ 입니다.


3) RADIO JAMMING
각종 무선 통신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두 명 이상의 무선국에서, 동일한 무선 주파수에 동시에 송신(교신)을 시도할 때 발생하는 통신 장애 현상입니다. 이 경우, 두 음성이 서로를 간섭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이나 끊어진 단어들의 조합으로 들리게 되어 정상적인 교신이 불가능해집니다. 특히 이륙 허가와 같은 중요한 지시가 전달되지 않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항공 안전에 즉각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RUN!#@$% WIN !%!@$KNO !@$CLEAR !@# KE OF!@"


순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RADIO JAMMING’은 두 명의 조종사가 동시에 송신 버튼을 눌렀다는 신호입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레이더 화면과 지상감시 장비를 빠르게 훑었습니다. 이 순간에, 저를 호출할만한 상황에 놓인 다른 항공기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입니다. 이륙 허가를 받은 항공기 외에, 이 허가에 대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지요.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다급하게 마이크를 붙잡고 외쳤습니다.


"NAVY XXX, HOLD POSITION!! 멈추세요! 그쪽으로 나간 이륙허가가 아닙니다! 바로 정지하세요!"


"ROGER. HOLD POSITION. 현 위치 정지합니다. NAVY XXX"


그렇습니다. 보조활주로에서 대기하던 헬기가, 주활주로의 항공기에게 보낸 허가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이륙을 시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경로가 교차하는 활주로에서 두 항공기가 동시에 심장을 울리기 시작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운이 나빴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참사가, 천운으로 충돌을 피했더라도 급작스러운 회피 기동으로 인한 파손은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처럼 모든 절차와 규정을 습관처럼 지켜내도, 불가해한 균열은 대부분 제 의지를 벗어난 곳에서 발생하곤 합니다. 항공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는 서로를 믿는 동료인 동시에, 서로의 실수를 감시하는 것에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사람이기에 저 하나만 잘한다고 해서 완벽한 안전이 보장되지도, 제가 잠깐 실수했다고 해서 반드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운명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인 한 걸음을 짚어내는 것은, 결국 늘 깨어있는 눈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자의 몫이 됩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스스로를 연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당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그날 이후 어떤 사람으로 변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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