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관제사에 대해 알고 있나요?
1. 소개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상대방에게 소개해야만 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그 순간을 썩 반기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대부분은 생각지 못하게 고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관제사입니다."
이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상대방의 눈에서 반짝이는 호기심이 이내 텅빈 눈동자 뒤로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질문은 늘 대부분 같지요.
"아... 그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건가요?"
그때부터 고군분투가 시작됩니다. 저는 허공에 보이지 않는 항로를 그려 보이고, 수십 대의 비행기가 얽힌 레이더 스크린을 손짓으로 묘사하며, 찰나의 판단이 수백 명의 안위와 직결되는 제 하루를 전문적이지 않은 평범한 단어들로 필사적으로 엮어내야만 합니다. 마치 한 번도 색을 본 적 없는 이에게 새벽빛의 감동을 설명하려는 화가처럼, 제가 가진 언어는 언제나 거대하고 복잡한 현실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길고 서툰 설명이 끝나고서, 상대방이 마침내 "아, 정말 힘든 일이시군요"라며 예의 바른 이해의 표정을 지어 보일 때, 저는 오히려 더 깊은 공허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의 자부심과 책임감, 그 치열한 세계가 결국 ‘힘든 일’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순간,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이 과연 가치가 있었을까 하는 자괴감이 알게 모르게 스며들기도 하지요.
이런 사소해 보이는 불편함은, 저의 직업적 자부심이라는 지반을 조금씩 침식시키는 미세한 균열과도 같습니다. 저는 제가 지키고 있는 이 하늘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의 어깨에 걸린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과 이해를 받지 못하는 노력은, 마치 관객 없는 무대 위에서 홀로 펼치는 혼신의 연기와 같습니다. 멀고 어두운 바다에서 홀로 빛나는 등대처럼, 존재가치의 의미를 스스로 증명해나가는 길입니다. 스스로는 그 가치를 알기에 멈출 수 없지만, 어두운 객석에서 느껴지는 침묵은 결국 ‘나의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만듭니다. 아마 이것이 저뿐만 아니라, 제 선배들과 동료, 그리고 앞으로 이 길을 걸을 후배들이 평생에 걸쳐 마주해야 할 ‘직업적 회의’라는 그림자의 본질이겠지요. 우리는 서로의 눈에서 같은 종류의 고독과 싸우고 있음을 묵묵히 읽어낼 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때때로, 하늘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공유하는 '항공기 조종사', 흔히 '기장님'이라 불리는 분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자기소개는 매우 간단명료거든요.
"저는 OOO 항공 기장입니다."
얼마나 짧고 간단하면서 충격적인가요. 그 짧은 문장은 단순한 직업 소개를 넘어, 수년간의 훈련, 막중한 책임감, 그리고 사회적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들을 한순간에 증명해냅니다.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들의 치열한 일상과 전문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존경을 표하지요. 제가 부러운 것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단 한마디의 추가적인 노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 ‘명료함’, 자신의 가치가 오해 없이 전달되는 그 '효율성'입니다. 그들이 짊어진 엄청난 책임의 무게를 존경하면서도, 그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이해의 편의에 나름의 질투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제 스스로가 단단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제가 이 글의 첫머리부터 이렇게 긴 변론을 늘어놓는 이유는 단 하나 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서 단순한 지식의 여행을 넘어, 한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오는 깊은 공감의 여행을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 글이, 레이더 스크린 위에서 깜빡이는 수많은 점들이 단순한 기계 신호가 아니라, 전국의 수백 개의 삶과 이야기임을 매 순간 되새기는 한 관제사의 목소리로 들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저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관제사들이 이름 모를 당신의 안전한 비행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짊어지고 있는 그 책임의 무게를, 아주 잠시나마 함께 느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글이 그 작은 이해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