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관제사의 하루

#때로는 아찔한 이야기

by 동경

관제사로서 업무를 하다 보면, 보통의 상상력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일들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경력이 쌓인 관제사라면 약간의 당혹감을 프로다운 자세 뒤로 숨긴 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지요. 하지만 그 일이 다른 조종사나 정비사, 혹은 다른 기관으로부터 전해질 때면, 당황한 기색을 감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분명히 알아들었음에도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저도 모르게 되묻는 것입니다. 전달한 이를 괴롭히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그저 명백한 인지부조화의 영역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예?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이라고요?"


상대에게 모든 상황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불편함을 안겨주더라도, 우리는 모든 것을 명확히 파악하고 처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마 동료 관제사들이 들어도 흥미로울 이야기가 많을 겁니다. 하물며 이 분야에 익숙지 않은 분들에게는 얼마나 신선하게 들릴까요. 이 태그를 달고 있는 이야기들은, 제가 직접 겪었거나, 동료들에게 실감 나게 전해 들은 나른한 사건들을 엮어내었습니다.


#1 고임목 (Wheel Chocks)


제가 관제탑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파릇한 새싹이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그때는 세상에 COVID-19가 짙게 드리워, 북적이던 하늘길에 강제로 휴식이 선고된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한때 하루 평균 500대를 소화하며 한반도의 핏줄이던 Y711과 Y722 항로¹⁾는 하루 100대가 겨우 지나는 한가한 오솔길이 되었고, 단일 활주로 공항²⁾ 중 세계 수위의 교통량을 뽐내던 제 보금자리 역시, 고요한 적막만이 손님인 전망 좋은 카페나 다름없었지요.


그날도 하늘은 새싹인 저보다 한층 더 푸르렀고, 텅 빈 제 머릿속보다도 깨끗한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는 평범한 오후였습니다. 제가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보통 이런 완벽한 일상을 깨뜨리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허가중계석(Clearance Delivery)에 앉아 구름처럼 떠다니던 제 의식을 현실로 끄집어낸 것은, 유리창을 깨뜨리듯 정적을 가르는 요란한 전화벨 소리였습니다. 발신지는 종합상황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저희를 찾지 않는 곳입니다. 뒤통수를 스치는 서늘한 예감을 애써 누르며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아, 관제사님 안녕하세요. 종합상황실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공군 수송기 한 대가 앞으로 구르더니 화물청사에 코를 박았다고 합니다. 관련 부서에는 모두 전파되었고, 현재 주변 통제 및 처리 진행 중입니다. 해당 위치로의 항공기 통행에는 문제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 예... 예?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라는 인삿말이 무색하게 전화를 받은 저는 바로 안녕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인지부조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다시 가출하려는 의식을 겨우 붙잡고 반문했지요. 그와 동시에 고개는 본능적으로 해당 항공기가 주기된 위치를 비추는 CCTV로 향했습니다. 평소라면 수송기의 조종석과 정답게 눈을 맞췄을 화면에는, 낯설게 등을 돌린 꽁무니와 꼬리날개만이 덩그러니 보일 뿐이었습니다.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최초 내용을 반복해 준 상황실 직원의 전화를 끊자마자, 여전히 한가로운 하늘을 유영하던 선임 팀장님께 침착하게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유관 기관에 정보를 전파하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은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이었습니다. 관제사의 개입이 전혀 없었던 일인 데다, 공항 운영에 미치는 영향도 없었고, 무엇보다 민간 항공기가 아닌 군용기였으니까요. 약간의 소란을 감내하면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글로 다시 엮으면서도 믿기 힘든 이 사건의 전말은 이랬습니다.


본래 항공기가 계류장에 주기하면, 바퀴가 멋대로 구르지 않도록 앞뒤에 '고임목(Wheel Chocks)'을 받쳐 둡니다. 물론 항공기 바퀴 자체의 유압식 주차 브레이크도 엔진이 꺼진 후 작동하지만, 이토록 무겁고 값비싼 기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2중, 3중의 안전장치가 필요한 법입니다. 안타깝게도 사건의 주인공은 브레이크라는 족쇄도 풀려 있었고, 고임목이라는 버팀목마저 없이 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예민한 친구는 마치 '날 혼자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는 다섯 살배기 아이처럼, 자유를 향한 소심한 첫걸음을 떼듯 경사진 계류장을 따라 서서히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공항 화물청사에 제 코를 박는 것으로써 가장 조용하고도 극적인 시위를 벌인 것이지요. 문제는 항공기 조종석 앞의 코(Nose)는 미관상의 목적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 안의 빼곡한 레이더와 전자장비를 보호하는 갑옷이기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이 별것 아닌 듯한 해프닝은, 저 멀리 김해에서 제주까지 별똥별³⁾이 떨어질 만큼 거대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희와는 무관한 일이었지만, 화면 속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어딘가로 다급히 전화하던 군인의 뒷모습에서 알게 모르게 짠내가 느껴졌습니다. 무언가를 책임져야 하는 그 무게감을 저희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짠한 감정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의 무게를 가늠하는 동업자 정신이자 직업정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작은 증표가 아니었을까요?


¹⁾ 중국 동해안과 일본, 동남아시아를 최단 거리로 잇는 쌍둥이 국제항로입니다.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항공 물류와 여객 흐름이 집중되는 길목으로, 코로나19 이전에는 연간 17만 대 이상의 항공기가 이 두 항로를 이용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통 밀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수많은 국가의 항공기가 24시간 내내 교차하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하늘길입니다.

²⁾ 단일 활주로 공항이라 표현했지만, 실은 주활주로를 교차하는 보조활주로를 가진 2개의 활주로가 운영되는 공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활주로라 표현한 것은, 보조활주로는 출발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고, 그마저도 제약이 많아서 교통량의 95% 이상을 단일 활주로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³⁾ 대한민국 제5공중기동비행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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