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된 할머니를 떠올리며 적는 글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농촌은 언제나 낯설었다. 수세식 변기, 삐걱거리는 지붕 위 쥐 소리, 소똥 냄새가 베인 할머니의 품이 불편해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고 조르곤 했다. 살아있는 닭을 잡아 차에 싣고 이동하던 날은 어린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스무 살을 훌쩍 넘어선 뒤에야 그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여름마다 찾은 할머니 댁에서 치킨을 먹고, 간식으론 산딸기를 먹었다. 그리곤 할머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곤 계란말이뿐이었지만, 커다란 후라이 팬에 계란 세 개를 풀어 돌돌 말아내면 할머니는 재밌다며 늘 웃어주셨다. 그 웃음이 오래갈 줄 알았다. 그 추억도 잠시, 코로나19로 백신 주사를 맞은 뒤, 할머니는 목욕 중 쓰러지셨고 결국 요양병원에 머무르게 되셨다.
나는 여러 차례 기회를 놓쳤다. 대구로 올라가 석사 과정을 시작하던 날, 혹은 친구와 여행 갔던 날, 마음만 먹었다면 할머니를 찾아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늘 ’졸업하고 가야지‘, ’아버지랑 같이 가야지‘ 라는 핑계로 미뤘다. 그리고 끝내,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팔월 어느 날, 병원에서 할머니의 산소 포화도가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잠시 호전되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고, 결국 산소 호흡기조차 할머니를 지켜내지 못했다. 비가 쏟아지던 날, 할머니를 불구덩이로 보내야 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재가 된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향하던 길, 무덤가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산소 옆에 할머니를 모시는 순간, 나비 한 마리가 곁을 맴돌았다.
그날 이후, 나비를 볼 때마다 할머니를 떠올렸다. 놓친 순간들은 사라졌지만, 나비가 머무는 동안만큼은 할머니가 곁에 계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