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아빠, 수줍은 엄마

딸은 결혼하고 싶어요.

by 김영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곱씹게 되었다. 관식이 애순이를 절절하게 사랑하는 모습과, 애순의 삶, 금명의 삶을 보며 1화부터 통곡을 했다.


다정한 아빠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농사 짓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공부를 꽤 잘했다. 하지만 어려웠던 환경 탓에 도시락 반찬은 늘 멸치나 풀이었고, 어떤 날은 굶기도 했다. 그는 밭일을 하지 않으려고 묵묵히 공부만 했고, 해양대학교를 졸업하며 기관사가 되어 외국을 다녔다.


수줍은 엄마는 대도시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일등만 했다. 영리하고 똑똑했기에 학교도 일찍 들어갔다. 그녀의 도시락 반찬은 늘 계란이었으며, 그녀의 집에는 TV가 있었다. 그녀는 부모의 도움 없이도 뭐든 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항상 시기와 질투를 받는 존재였다.


그렇게 서른이 넘어가게 되자, 둘은 친척들이 주선해준 선을 보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아이를 출산했을 때, 그는 기관사로 외국에 있었다. 그녀는 혼자 출산한 것이 외로웠고, 힘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아이가 출산하기 전, 그는 기관사를 그만 두었고 회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삶 속에서 내가 태어났다. 부모가 처음인 그들은 서투른 부분이 있었지만, 그들의 사랑만큼은 온전히 전해졌다.


”우리 딸은 내가 100만 원 주고 샀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그는 그녀에게 100만 원을 주고 나를 샀다. 30년 전이 더 되었을 무렵에, 남아선호 사상이 존재했을 때였지만, 그는 나를 엄청나게 사랑했으며, 항상 그녀에게 매일 말했다.


”우리 딸은 내 보물이고, 내 자산이고, 내 거야.“


어렸을 적, 아빠가 말하는 말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엄마보다는 아빠가 더 좋았고, 매일 화가 나 있는 엄마를 대신하여 항상 웃고 있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많다. 친구들과 더 놀고 싶어서 늦게 들어간 집에서도, 피아노 학원에 가고 싶지 않아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갔을 때도 엄마는 나에게 화만 내었고, 아빠는 내가 상처받지 않게 달래주었다. 그렇게 아빠는 늘 내 일에 관심을 가졌고, 그에 비해 엄마는 항상 일에 지쳐있었다. 퇴근하면 저녁 차리기 바빴고, 씻고 나면 온몸이 나른해져서 바로 잠이 들었다. 어깨는 아래로 내려져 있었으며, 눈동자를 자주 깜빡였다.




방황 없는 사춘기를 보내고 스무 살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되면 10대보다는 좀 더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통금 시간은 늘 있었고, 자취를 할 때에도 매일 전화로 저녁 인사를 꼭 나누었다. 어쩌면 스스로가 만들어낸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연애하기 시작했다. 처음 연애한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겨울 목도리에 아빠는 질투했다. 이 모습에 엄마는 아빠의 모습에 ”호호“ 비웃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헤어졌다. 나는 아빠와 엄마를 앞에 두고 펑펑 울었다. 아빠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번의 연애를 할 때마다 아빠와 엄마는 나의 연애에 대해 궁금해했다. 연애 자체보다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한다. ‘어떤 조건을 가진 사람’인지 말이다. 그리고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나의 학력과 가정형편에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아빠와 엄마가 말하는 그 조건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상처받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그 방식이 나에게는 사랑보다 ‘기준’으로 남아있다. 자연스레 ‘과연 부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뭐가 못났다고 그런 사람을 만나니?“

”자존감이 이렇게 낮아서 되냐?“

”정신 차려라.“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전화를 끊었고, 끊자마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아직도 그날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고, 늘 연애를 시작할 때면 그들이 정한 기준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이 사람은 괜찮을까?’

‘나 결혼할 수 있을까?’


다음날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남자 친구 없으면 아빠가 남자 친구 해줄게.“


나는 이 말을 듣고 충격과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나를 그들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서 언제쯤이면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나를 언제쯤이면 놓을 수 있을까.


결혼을 하기 위해 독립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독립을 하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일까.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씩은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들의 기준에 맞추어 과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왜 그들은 나의 사랑을 지지하거나 응원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을까.




나는 여전히 그들의 속에 있지만, 언젠가는 그 사랑을 집착이 아닌 응원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서 ‘폭싹 속았수다’를 다시 보며 그들을 헤아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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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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