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지하철 여행

by 김유정

종종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다녀오곤 한다. 지하로만 다니는 게 아니라 흔히 말하는 지상 선로가 많은 걸로 타고 풍경을 보며 다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내에서 타는 지하철은 그 시간동안 방해받지 않고 ebook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에 공간이 있어 보이는데도 살이 맞닿는데 굳이 붙는 이들을 보면 피부가 플라스틱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답답하면 숨쉬기도 힘들다.


어릴 때 여행 갈 일이 거의 없는 집에서 태어났기에 어딘가로 가서 풍경이 보고 싶을 때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가보곤 했다. 평소에는 전혀 갈일이 없는 곳을 경험하고 풍경을 잠깐 보고 나서 바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집에서는 어디서 놀길래 그렇게 오래 밖에 돌아다니느냐 했지만 그렇게 이동하며 보는 풍경이 나에게는 소소한 취미가 되었다.


예전에는 서울 외곽즈음 가면 사람이 확 줄어서 편하게 여행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서울을 벗어난지 좀 되었는데도 서서 책을 보며 바깥을 조금씩 보곤 한다. 전설적인 지하철 답게 오늘도 온갖 기인들이 묘기를 부리며 지나가기도 하고 잡상인이 나타나기도 하고 시골 아주머니들이 타고 수다를 나누기도 하고 시내 지하철에서는 보기 힘든 버라이어티한 풍경이다.


어느덧 바깥에 호수가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온게 보인다. 나는 어릴때 엄마가 아픈 이후로 나들이라는 개념의 가족 여행을 해본적이 없기에 조금은 신기한 풍경으로 느껴진다. 나는 집밥이라고 하면 탄밥에 신김치가 먼저 떠오르지만 다른 이들은 진수성찬을 먼저 떠올리듯이.

그중 호숫가에 아이를 목말 태우고 걷는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 사람들은 어떤 기분으로 걷고 있는거지, 더 없이 행복한게 저런건가, 그런데 뭐 하나 부서지면 금방 바뀌잖아? 여러 생각을 가지는 사이 그 가족의 풍경은 터널 속으로 사라졌다.


조금 더 지나니 내부 풍경이 한산해지고 어느덧 지하철에 나를 비롯해 3명 정도만이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바깥을 조금이라도 보는 건 나 혼자, 나머지는 열심히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창가에 반사 된 걸 뭔가 슬쩍 보니 두 사람 다 숏폼 동영상에 몰입해 있다. 좋아하는 걸 보는건 자유지만 나는 요즘의 영상들은 너무 자극적이거나 단편적인 내용이 많은 거 같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사람마다의 차이는 큰 거 같다. 무엇보다 '글로 20-30초면 알 지식'을 굳이 장시간 영상을 보고 배우는 건 영 맞지 않아서.


어느덧 종점이다. 잠시 내려서 바깥을 거닌다. 어릴 때 지하철 종점은 글자가 크게 표기 되어서 대단한 곳인줄 알았는데 밖으로 나와보면 텅빈 동네가 많아 당황하면서도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조금 걷다보니 여기도 저쪽에 아파트 공사를 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아, 저 못생긴 성냥갑이 또 이 풍경 속을 장식하겠네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저 미적 감각 0점인 성냥갑에 열광하는지...옛날에는 이 근처에 센베이 과자 파는 아저씨도 있던 기억인데 지금은 어떻게 보면 더 황량하네. 조용한 공기와 풍경을 맞이하기 위한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거 같은 기분이 들어 근처 편의점에서 물 하나를 사서 다시 역으로 돌아갔다.

이전 04화퇴근 후 서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