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내가 너를 놓지 못했던 이유
소제목을 보고 글의 본문을 눌러보기 전까지 적지 않은
이들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렴풋이 떠올렸겠지 싶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테지.. 하지만 내겐 사랑보다 더 큰 무언가가 K와의 관계를 놓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K와의 연애를 지속할수록 행복을 잃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불행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시인할 수 없었을 뿐이다. 좋은 순간만 가득한 사랑을 꿈꾸는 것은 어렸을 적 하던 풋사랑에서나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며, 서로의 고단함까지도 함께 짊어지는 것이 그보다 값진 것이 아니겠냐고. 그렇게 낭만 실조에 단단히 빠져 있었다. 한껏 센치해진 나의 말은, 어쩌면 그와 함께하는 순간 속에서 행복(+)보다는 고단함(-) 더 커져가고 있다는,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곧 소멸(0)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포장하기 위해 만든 만든 회피성 멘트였을지도 모른다. 헤어질 즈음에 다다라서는 이전과 달리 수척해진 얼굴이 주변 인들의 걱정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필사적으로 행복을 연기했지만 결국 그 누구도 속일 수 없었다.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이별을 고민했다. 내게 이별이라는 선택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던 것은 아니다. 다만, 선택할 수 없었을 뿐이다.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K를 놓을 수 없던 이유는 그저 ‘미련’ 때문이었다.
보상받고 싶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허상을 지켜내야만 했다. K와의 연애로 인해 행복한 나날들이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그 플롯을 나는 아무런 결점 없이 완성시키고 싶었다. 내가 건넨 정성과 노력, 사랑이라 치부하던 그 모든 것들이 내게로 되돌아오길 바랐다. 흔히들 주식에 빠지면 본전을 찾을 때까지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내게는 사랑이 그와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다 보면 K도 언젠가 내가 베푼 만큼의 사랑을 줄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손으로 K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었다.
그와 만나는 내내 늘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이별을 말할까 싶다가도, 혹시 모를 기대와 미련이 섞인 마음으로 만남을 이어갔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K에게 결정을 떠넘기는 것뿐이었다. 한껏 차가워진 말투, 냉담한 표정, 힘을 뺀 채 마주 잡은 손, 영혼 없는 토닥임. 그 모든 것이 이미 K에게 이별을 말하고 있었음에도 내 입으로 차마 헤어짐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지쳐있는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떠날 수도 있다는, 당장에라도 떠나버리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싶었다. 나는 자주 눈물을 보였고, 그럴 때마다 K는 보이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한 달을 버티다 결국 그는 이별을 고했다. 이별을 통보당하고 마음이 후련한 건 처음이었다. 자의로는 끊어낼 수 없던 굴레에서 벗어난 듯 홀가분해졌다. 적어도 이제는 불행하지 않을 거란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