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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루 Jul 11. 2023

K와의 연애

우리는 없었다

너는 내게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만 같았다.


이래도 나와 헤어져 주지 않겠느냐고. 술을 마시고 늦은 시간까지 연락이 없어도,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이 될까 한 데이트에서 늘 피곤한 모습을 보여도. 영혼 없는 눈빛, 공감 없이 무미건조한 대화. 우리의 대화에 더 이상 ’우리‘는 없었다. 내가 모르는 ‘너’와, 너는 궁금하지 않을 ‘나’ 각자의 이야기만 있을 뿐. 그마저도 묻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을 얘기들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우리는 신년 계획과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공간에 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서로의 존재가 무안할 정도로, 너의 계획 속에는 내가 없었다. 장난스레 물었다. K의 신년에 나는 없는 것이냐고. 진지하게 묻는 건 이별을 앞당기는 일 밖에는 되지 않을 테니까.


“내년에도 건강하자”


 K의 대답이었다.


뜻밖의 대답,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걸까. 아니,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 그가 한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리고 곱씹어 보았다. 도무지 삼켜지지 않았다.


 함께 여행을 가자는 말도, 색다른 경험을 해 보자는 말도 아니었다. 마지못해 너의 계획 중 가장 그럴듯한 것에, 그리고 표가 나지 않을 법한 것에 나를 끼워 넣어 준 듯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미래에서 서로를 지워가고 있었다. 더 이상 무엇도 약속하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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