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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루 Jul 04. 2023

K와의 연애

그건 아마도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K에게 생긴 갑작스러운 일정 때문이었다.


별 수 있나. 알겠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수밖에.

그저 남들이 특별하게 만들어 놓은,  그저 평소와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일 뿐이라고. 그렇게 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수없이 많이 실망하게 되면, 그것도 내성이 생긴다. 우리의 관계에서 일상이 되어버린다.


 또 실망하고 아파할 나 자신이 안쓰러워서라도 나는 최대한 괜찮은 (연애를 하고 있는) 척해야 했다. 내 속에 감춰진 슬픔은 나 혼자 아는 걸로 족했다. 아니, 남들은 몰라야만 했다. 그래야만 내가 행복한 여자로, 사랑받는 여자로 살 수라도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며칠 뒤에 우리는 만났다. 내 손에는 너에게 줄 선물이 들려 있었다. 미안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실망할 때마다 일종의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들어 괴로웠고, 그럴수록 너에게 더 잘해 주었다.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프로이트가 제시한 자아방어 기제 중 하나이다. 나에게 수용될 수 없는 충동을 반대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 그러니까 쉽게 풀어 이야기하자면, 내가 실제 느끼는 감정과 정반대로 그를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그에게 실망했지만, 애인에게 매 순간 실망하는 것은 ‘좋은 여자친구’로서의 모습이 아니라고, 옳지 못한 모습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K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조금은 가미되어 있었다. 내가 그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응당 그런 것이었다. 제발 나에게 잘해 달라는, 더 이상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경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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