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집 이야기 Apr 12. 2017

내가 이사한 그 집

-선택 이후의 행동에 대해서-



최근 만병통치 약을 처방받았다.
모든 직장인들의 두통 위장병 우울증을
한 번에 처리해줄
'퇴사'라는 처방전이다.

 


나는 가끔 자신이 해오던 일과 전혀 다른 어떤 일을 해보기를 권한다. 잠시 기존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이다. 


1년 정도 전혀 다른 일을 했다. 프리랜서였던 내가 매일 출근을 하며 매달 월급을 받았다. 10년 만에 다시 하는 직장생활이었다. 평범한 회사원들처럼 회사에 대해 욕하고 직장 내 떠도는 소문들에 대해 주워듣고 오늘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렇게 업무가 끝나고 내 시간이 오면 온전히 나를 위해 썼다. 물론 약속이 있는 날을 제하고 너무나 고단한 날을 제하면 시간 상으로는 얼마 되지 않은 날들 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버는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정도의 돈만 벌 수 있으면 됐다. 최신 휴대폰을 가지고 멋진 차를 끌며 근사한 식당에서 최신 트렌드의 옷을 입고 앉아 식사를 하는 꿈을 꿀 수는 없는! 정말 딱 먹고살 만큼의 돈만 벌었다. 적금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부모님께 보여 드리는 효도를 할 수도 없었고, 일정 범위 이상의 고가의 물건을 탐낼 수도 없었다.


그래도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이 있어 좋았다. 업무를 마치면 온전히 내 시간인 게 다음 날도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래도 가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리고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고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퇴사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꿈속에서 몇 번의 이사를 다니고 있다. 이사란 무엇인가 기존에 내가 가졌던 공간과 주변의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돈이 많아 교통이 편리하고 따뜻한 해가 드는 그런 곳에 집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출발로 누군가와 함께하는 보금자리를 얻을 수도 있다. 어쩌면 사정상 지금보다 좋지 않은 환경으로 옮겨가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집으로 이사했을까?

꿈속에서 이사한 집을 살펴보자.

2016년 12월 13일  화요일의 꿈

막 이사를 끝내고 책상에 앉아 있다. 창문 너머로 이삿짐센터 직원이 지나가면서 버릴 물건을 가져가는데 책상 위 시계를 가져간다. 오래되어 보이는 디자인에 고장이 난 건지, 건전지가 다 닳아 버린 건지 움직이지도 않는 시계다. 직원이 가져가는 게 싫어서 다시 돌려 달라고 한다.

한쪽에는 긴 줄기의 식물을 낮은 비커에 담아 키우는데 줄기 하나의 잎들이 거뭇거뭇하다. 직원이 잎이 왜 이러냐고 묻는다. 이 줄기 자체가 병이 든 거 같다고 하자 직원은 그 줄기만 잘라 준다. 식물을 들고 다시 자세히 보니 열매들이 가득 달려있다. 작은 피망 모양의 빨간 열매, 초록 고추, 주황색의 방울토마토다. 나는 이렇게 키운 걸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이사를 끝낸 나는 내 공간인 책상에 앉아 있다.  물건들은 내 것이라 익숙하지만 이 공간은 아직은 낯선 곳이다.


이사를 도와준 아저씨는 시계를 가져가려고 한다.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는 그동안 멈춰 있었다. 그동안 멈춰 있을 수밖에 없는 내 안의 시간은 오래되고 낡은 시계로 내게 그동안의 멈춰있던 시간을 알려 준다. 나에겐 그 시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스스로 건전지를 넣을 시간도! 작지만 고정된 수입과 안정되어 보이는 날들 중에도 스스로에게 품어왔던 의심의 시간에 대한 확인이다.

 내가 키우는 식물의 일부는 거뭇거뭇하게 병들어 가고 있었다. 이것을 먼저 발견한 아저씨는 스스럼없이 잘라 버린다. 이렇게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다. 잘라내고 정리하는 에너지가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자르고 나니 벌써 작은 열매들을 맺는다. 이사를 하고 정돈을 한 것만으로도 내 안의 열매들은 벌써 자라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열매는 자랐지만 나는 여전히 의심한다. 이걸 먹을 수 있을까? 실로 나스러운 의문이다. 다시 이렇게 내 작업을 한다고 나온 것이 어떤 성과가 있을까? 이렇게 해서 앞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혼자 고집부리다 점점 고립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들이다.

이사를 도와준 직원은 어떤 인물 일까? 이삿짐센터의 직원들을 보면 항상 놀랍다. 강한 강도의 노동에 대한 놀라움도 있지만 오랜 노하우로 순식간에 포장과 해체를 한다. 불가능을 실현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한국의 이삿짐센터가 아닐까. 불가능해 보이는 물건을 넣고 빼고 빠른 시간 안에 공간을 비웠다 채운다. 진정한 프로다. 이사를 위해 잠시 나는 그 프로를 고용했다. 프로는 공간을 재정비해주고 내가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내가 새로 해나갈 일들이 내겐 숙제로 남아있다. 지금 이사한 이 공간은 누구랑 살고 있는지 다른 공간은 어떤 곳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책상에 앉아 내 눈이 닿는 공간을 확인했고, 나는 지금 여기서 조금은 더 나답게 살려하고 있다. 그것이 앞으로 더 윤택한 삶인지 아닌지는 지. 금. 은. 알 수 없다.

계약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고 다시 나온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누군가는 아직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진짜 어려움을 모른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의 지나가는 말은 가볍게 흘려주자. 내 문제를 나만큼 고민한 사람은 나뿐이다!


선택은 늘 후회를 남긴다. 남긴다기보다 후회를 하게 만든다. 더 중요한 건 선택을 하고 난 이후다. 그 선택이 최선이든 차선이든 선택 이후에 나의 행동이 미래의 나를 만들 것이다.


꿈속에서 새로 이사한 집에서의 삶을 시작했다면 그 집에서의 삶을 가꿔보자. 그 집이 내가 그동안 너무나 꿈꾸며 찾아왔던 집이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배제하고 선택한 차선의 선택이라 할지라도, 이 집에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할 것이다. 비록 불확실함과 불안이라는 친구를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앉아 있을지라도.


빨강머리 앤의 대사처럼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멋진 게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첫눈에 반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