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집 이야기 May 12. 2017

관계 회피형 인간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기-

나는 개인주의자다.


소수의 사람만 만나고 가족에게 조차 명확한 선을 긋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내게 염세주의자, 자폐성향, 부정적, 냉정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한다.

평생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자기 안으로 쏙 들어가는 건 내게 제일 쉬운 방법이다. 혼자라도 불편할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공감과 배려를 동반한 친밀한 관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친밀한 관계를 회피하고 있는 건 나일지도 모른다. 이런 나를 꿈으로 들여다 보자.


2017년 4월 26일 수요일의 꿈

작은 단칸방에 혼자 있다. 밤 9시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 문을 열고 보니 팀장이다. 달갑지가 않다. 언제나처럼 특유의 톤으로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회사에 대한 불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평들이다.

반응이 시큰둥한 게 느껴졌는지 나에 대해 묻는다. 나는 나를 따라다니는 스토커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묘하게 나를 따라다니며 주위 사람들은 거의 눈치채지 못하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낮이다. 집 밖으로 나와 어딘가를 가려는데 저쪽에 후드티를 뒤집어쓴 스토커가 보인다. 나는 뛰기 시작한다. 골목 여기저기로 도망 다닌다. 스토커는 나를 계속 쫓아오고 결국 우리는 마주친다. 스토커는 내게 억울하다는 듯 호소한다. 자기에게 일어난 감정에 내가 일조했는데 이제 와서 왜 이렇게 자신을 피하는 건지 무척 억울해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거리를 두고 그를 바라본다.


스토커를 피해 도망가는 나는 크게 다급해 보이지도 절박해 보이지도 않았다. 스토커의 말처럼 이 사람은 내가 알던 사람이었던 걸까? 우리는 정말 한때 친밀한 관계였을까?!


이 꿈은 단칸방에 혼자 있는 나로 시작한다. 마치 옥탑방 같은 형태의 이 방은 어딘가에 덩그러니 있다.

온전한 나만의 세계다. 작고 보잘것없지만 나만의 성이다. 이 성에 늦은 시간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전 직장의 팀장이다. 팀장이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은 너무나 현실 같아서 불쾌한 장면이었다.

밤 9시에 찾아오는 것처럼 가끔 팀장은 퇴근 후 내게 전화를 했다. 이야기를 하면 나는 맞장구를 쳐주는 상대였다. 회사에서 나는 팀장에게 믿을만한 사람,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타인에게 절대 발설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어쩌면 팀장은 내가 너무 편했거나 나랑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즐거웠나 보다.


어쨌든 회사에서의 시간은 공적인 시간이다. 업무 시간과 추가로 야근을 한다 치면 공적인 시간에는 이런 관계의 지속이 가능했다. 그 시간에는 회사에 발 붙이고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게 사회생활의 일부니까!


그런데 퇴사를 하고 나서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려 했고 나는 본 얼굴을 드러냈다. 상대는 섭섭해했고 당황스러워했다. 나의 공적인 생활은 끝났다. 더불어 나의 공적인 관계도 끝났다. 너무도 단칼에! 이런 관계에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했지만 이게 나의 방식이었다. (각자의 상황과 방식이 다르므로 이러한 방식이 좋다 나쁘다 한쪽으로만 논할 수는 없다.)


꿈속의 나는 이런 사람들을 스토커처럼 느낀다. 주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나를 괴롭히는 스토커다. 대낮에 마주친 스토커를 피해 도망간다. 이리저리 골목길로 피해 도망가도 결국 그와 마주친다. 그리고 너무나 억울해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관계 속에서 일방적이기는 어렵다.

(실제 범죄 스토킹등등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 분명 상호작용하는 관계 속에서 나는 그들과 즐거웠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있게 사적인 관계로 발전하려 하면 항상 저 멀리 도망가고 만다.


그 관계 속에서 친밀함을 나눌 기회는 없었을까?

나는 최소한의 시도라도 해봤을까?



나는 나와 타인의 구분이 너무나 분명하다. 쿨하고 명료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관계가 이렇기만 했다. 관계를 잘라버리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친근했던 관계는 한 번에 정리가 되었다. 심한 감정의 동요도 없다. 인연이 된다면 또 만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먼저 그들에게 연락해 인연을 이어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팀장과 나의 관계가 건강하기만 했던 관계는 아니었다.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과 들어주는 사람 사이에는 한계가 있다. 이 꿈은 자기 불만만 늘어놓는 타인에 대한 나의 분노도 담겨 있다.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그녀에 대한 분노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나의 욕망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상호작용하지 않는 자신과 타인 모두에 대한 분노다.


한편으로는 친밀함에 대한 나의 도망이다. 스토커를 마주했을 때 막상 그는 그렇게 위협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나와 정말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고 그가 호소한 건 억울함이었으며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때론 정말 잘라버려야 하는 자신을 소모시키기만 하는 관계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잘라버렸던 관계 속에는 서로의 다른 점은 보고 나누며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친구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도망가는 방법이 오래되었을수록 이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생각의 고착임을 안다. 수없이 많은 반복으로 내게 굳어졌을 것이다.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나의 환경과 기질 탓도 있지만 이 꿈을 꾸고 나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외면했던 내 이슈들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닐지라도 고착되어 있는 사람에게 직면은 크나큰 불편함이다. 다시 외면해버리고 싶다. 지금 이대로라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피하기만 하는 게 방법이 아닌 것도 알고 있다. 성가신 이 일을 더 들여다보고 마주쳐야 한다. 혼자도 즐거운 세상이지만 관계 속에서 오는 진정한 공감과 배려는 다를 것이다.


그런 관계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을 다시 열어보기로 했다. 서로 배려하고 때로는 투닥거리기도 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 말이다. 당장 관계 형성에 억지로 자신을 구겨 넣을수는 없다. 지금은 조금은 나를 버리고 마음을 나누자 라는 생각의 시작이다.

작가의 이전글 불확실성의 문을 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