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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Dec 21. 2020

모든 건 공 덕이다!

야구공과 종양에 관한 단상

생각해 보니 모든 건  때문이었다


사내아이들 둘은 공을 좋아하지 않았다출장길에 낑낑대며 사온 글러브들은 하릴없이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막내딸이 공을 던질만한 나이가 되었을 무렵 배드민턴 치자고 꼬셔서 나와 캐치볼도 같이 하곤 했다


사춘기 나이의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언어로 생활해야 하는 즉, 이국의 언어로 공부해야 하는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을 선택한 것은 나의 무모함이 반 이상 기여하였다하여간 앞뒤로 빠지지 않는 2년의 프랑스 살이를 마치고 돌아와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했던   하나는 건강 검진이었다이래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더욱이 병치레가 잦아지는 중년 이후의 타국살이는 그리 반가운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귀국하고 나서 이래저래 보고픈 사람들에, 미뤄두었던 가지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연유로, 제일 먼저 해야 했던 건강검진과 몸을 돌보는 일은 뒷전이 되었다. 인생이란 게 그렇다. 아픈 데가 없는데 아플지도 모르니 병원에 가보자라고 결정을 하는 게 일상에서 우선순위가 높아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이 흐르던 작년 가을 햇살이 좋던 주말 오후였다틴에이저로 접어든 그리하여 까칠하기가 이를 데 없는 막내에게 야구공을 들어 보이면  소리가 나도록 외면한다.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체력장에서 던지기 꼴찌를 면치못했던 어부인을 구슬려 아파트 운동장으로 나왔다그래도 두어 번 고무공으로 던지기 연습을 하고 난 뒤라 오늘은  폼도 좋고 직선으로 공이 날아온다칭찬도 해가면서 그렇게 어깨가 풀려가던 차에 공도 고무공에서 연습구로 바꿔  속도가 나오도록 던지던 참이었다머리 위에서  손을 떠난 공이 어부인 얼굴을 향해 날아가다 포구 지점에  근처로 내려갔다평범한 구질이다


목 근처로 가던 공이 공이 살짝 옆으로 흘러 오른쪽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아뿔싸!

사실 슬라이더나 커브를 구사할  모르기에 나는 그냥 직구만 던진다. 그런데 공이 옆으로 흐르다니 이럴 수가..


목을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벤치에 앉아 있는 십여분 동안 오만 생각이  지나갔다그러던 어부인 표정이 덤덤하게 바뀌더니 병원에  보라는 계시로 여기겠다 한다기실 오른쪽 갑상선에 새끼손가락만 한 종양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진즉에 알고 있던 터였다. 정기적으로 초음파 검사를 통해 추적하던 중이었으나 지난 2년 파리에 사는 동안은 이국땅에서 이 놈을 추적할 겨를도 여건도 되지 않았다돌아와서도 미적거리다 오늘 사달 아닌 사달이 나서 드디어 병원 행차를 결심하게  것이다


복잡한  이후 경과는 생략하고... 

수술 당일 두 시간 동안 수술실 밖에 있으며 그리고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과 집을 오가며 생각한다


모든 건  덕이다!


사족 1. 경과는 좋다. malignant 한 반쪽만 제거하고 나머지 반은 살렸는데 이후 경과에서 먹는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과정이다. 나머지 반쪽이 열심히 일한다는 증거다.

2. 외부에서 호르몬이 들어가니 오히려 컨디션이 좋아지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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