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특사 방문에 붙여..
지난겨울 오기 전 OECD경내 산책길에 핀 이끼가 정원사들에 의해 제거되었다. 그 이후 나는 이 길에 다시 이끼가 자라날 수 있을까 여러 차례 의심하였다.
일 년 동안 이 길을 걸으며 계절이 바뀌는 모습과 나뭇잎에 새 순이 돋아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아 왔다.
햇빛과 온도는 나무의 변화를 주관한다. 예전 농부님들이 때가 있다고 한 말을 사계절 지나오면서 절실히 느낀다. 겨울 나목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듯한 긴 시간 동안 마치 모든 것 멈춘 듯 하나 며칠 사이에 잎이 우거지고 며칠 사이 온몸을 뒤덮듯 꽃들이 피고 마찬가지로 핀 꽃들은 목을 뎅강 꺾으며 사나흘 만에 보도를 꽃잎으로 덥으며 사그라진다. 때가 있는 것이다.
건기라 부를만한 여름 한철.. 뜨거웠다. 한국보다는 덜하였겠지만 여기도 햇살이 화살처럼 내려 꽂혀 가을도 오기 전 나뭇잎이 작열하는 빛에 말라 떨어진다. 이런 날씨에 습기가 필요한 이끼가 자랄 일이 있을까.. 고개를 갸웃갸웃했으나 잔디를 말라죽게 하지 않으려는 정원사들의 노력과 스프링클러 덕에 물기를 머금은 보행로 가장자리에 이끼가 자라고 늦여름 가을맞이 비가 며칠 내리더니 이제 제법 파릇하다.
2017년 가을만 하더라도 북미 정상 간에 말폭탄이 오가던 험악하던 정세에 빠리로 파견 나와 이 길을 걸어며 혼란한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오늘 다시 이 길을 걸으며 이번 주에 있을 특사의 방북과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에서 들려올 소식이 다시 간절하다.
새소리가 피처링한 판문점 도보 다리 산책을 한반도 모든 시민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몽블랑과 돌로미테 트레킹이 내가 준 선물이라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남북정상이 걸었던 도보 다리 산책로를 확장하여 “DMZ 평화의 길”로 만들 수 있으리라 내 손으로 우리의 힘으로..
예전에 인용했던 싯귀절 오늘 다시 읊는다.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 W.B. Yeats -
내 당신 가는 길에 나의 꿈을 펼쳐놓았으니, 부디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오늘의 사족: 2018년 가을 대북 특사의 방문과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썼던 글이다. 그 해 여름 나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내기 어려운 긴 여름휴가를 맞아 몽블랑과 돌로미테 트레킹을 다녀와 그야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을 때였다. 그 근자감을 바탕으로 DMZ 평화올레를 제안하고 도보 다리의 시민 개방을 주장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이제 문학적 수사로서의 지뢰밭이 아닌 현실의 지뢰밭인 DMZ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안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