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왕래하여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4월의 마지막 토요일
아이들과 집사람은 불어 선생님 오셔서 공부하고, 막내는 플루트 교습이 예정되어 있어 홀로 집을 나서 루브르로 향하였다. 버스가 눈 앞에서 떠나버리기도 했지만, 구름 사이로 햇빛 비치는 걷기 좋은 봄날이라 세느강 북안(北岸)을 따라 걸었다.
벌써 몇 번이나 걸어서 오간 곳이기도 하지만 오늘에서야 눈에 들어온 광경이 있다.
지난겨울 세느강 범람 위기로 가슴을 졸이던 기간이 있었다. 이태 전 2016년 여름 실제로 범람이 있어 강변에 주민들이 대피했던 적이 있다는 전갈이 남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을 오늘 눈에 들어온 수표(水標)로 확인할 수 있다.
쓰고 보니 4월 27일 양 정상이 발표한 판문점 선언 기자회견문 중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에 수표(手票)하다는 표현을 듣고 고개를 갸웃한 적이 있다. “북과 남이 전체 인민들과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수표 한 이 합의” 이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이것이 원인이 되었을까? 어찌 동음이의(同音異義)한 수표가 눈에 들어왔을까? 기이하게 여기며 발검음을 옮기다.
파견지 파리에서 맞이한 첫겨울은 햇빛 한 줌이 아쉽고 정세는 험악하던 시절이었다. 불어난 강물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넘치면 어쩌나, 물이나 쌀을 더 사놓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며 걱정스럽게 지내는 때가 마치 꿈만 같다. 양 정상이 금기의 휴전선을 고무줄놀이하듯이 넘나들면서 분단의 장벽을 허물어 내리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듯이 앞으로 우리 모두도 각자의 분야에서 서로 오고 갈 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평화의 순례길을 만들고 싶다. 냉전시대 마지막 산물인 휴전선에 “DMZ 올레“ 도보여행길을 만들어 남과 북, 한겨레의 시민들이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고 지구촌 모든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찾는 평화의 제대로 만들고 싶다.
문익환 목사님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오늘 다시 찾아 읽는다.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오늘의 사족 1. 4.27 남북정상회담 다음날 세느강을 걷고 와서 쓴 글이다.
2. 6.12 북미 정상회담은 우리 모두 ‘DMZ 올레’를 걸을 수 있는 방향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꿈을 꾸었다.
3. 위 두 개의 사족은 글을 썼을 당시에 적었던 것이다. 1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읽으며 'DMZ 평화올레'와 그 올레를 자유로이 걷는 시민들을 위한 그 꿈을 계속 꾸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