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조끼 9번째 시위_최루가스와 1987년 기억의 소환
오랜만에 맡아본 최루가스는 87년 기억을 소환한다. 혁명을 통해 공화정을 시작한 나라의 최루가스는 내 기억 속의 최루탄의 강도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눈물 콧물을 흘리기엔 충분하다.
노란 조끼에 여든여섯 자신의 나이와 “Fait de la Résistance (Makes Resistance, 저항하다)”를 적어 넣고 거리로 나온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서리가 내리듯 하얗게 센 백발을 휘날리며 요구사항을 가득히 적은 피켓을 들고 (시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무장한) 경찰 앞을 주저함 없이 활보한다. 앞 문장 ‘시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무장한’에 괄호를 친 이유는 이 힘이 시민의 몽둥이가 될지 지팡이가 될지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공간에 대한 질문은 권력과 연계된다. 왜 질레죤느 시위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이루어지는가? 이는 파리의 공간에서 샹젤리제가 가지는 상징과 연관이 있다.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개선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축의 끝에는 프랑스의 과거인 루브르가 있고 왼쪽 축의 끝에는 현재의 프랑스를 상징하는 라데팡스의 Grand Arch가 있다. 역사의 축(또는 Paris Grand Axis)이라 불리는 이곳은 태양왕 루이 14세가 17세기 말 베르사유에서 이곳 루브르로 거처를 옮기며 리노베이션 하여 궁으로 위상을 확립하고, 미테랑 대통령이 라데팡스 신도시와 그랜드 아치를 20세기 말에 완성하여 도시 공간에서 축의 의미를 시간적으로 과거에서 현대로 확장하고 또한 미래로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왼쪽 파란 점이 그랜드 아치 그리고 오른쪽 보라색 점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이 축은 정확히 파리를 중심부를 관통하여 흐른다.
파리 지도와 역사의 축 위치
자료: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p_of_Paris_-_Axe_historique.svg
이 역사의 축 가운데 녹색점의 개선문이 있고 18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가 임명한 오스만 파리 시장의 도시계획으로 별 광장(Place de l'Étoile, 지금은 샤를 드골 광장으로 이름 지워짐)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라운드어바웃 형태로 뻗어 나가도록 계획되어 있다. 당연히 샹젤리제는 12 도로 중 가장 넓으며 도심의 가장 중요한 가로이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세계 톱 브랜드의 플래그쉽 상점들이 이 거리에 입점하고 있으며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 반드시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역사의 축과 주요 상징 건물 (Les Echos, 2002년 8월 12일)
UNWTO (UN 세계 관광기구)에 따르면 2017년 프랑스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8천6백9십만 명으로 세계 1위이다. 샹젤리제를 비롯한 파리 주요 도심에 위치한 상점들은 대부분 토요일에 문을 열지 못한 지가 꽤 되었다. 집 앞이 에펠탑이라 관광객을 늘 마주 대하고 사는 처지라 나도 대략은 숫자 변화가 짐작이 된다. 어부인 다니는 구청 불어 수업 짝꿍이 루브르 근처에서 식당을 하는 일본 할머니신데 역시 토요일 문을 열지 못하여 요금 근심이 크다 한다. 아는 분들 중에 노란 조끼 시위로 프랑스 방문을 취소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계속 간다면 방문객 1위 국가의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상황이 악화된다면 대형 상점과 백화점을 소유한 자본들이 마크롱에게 사태 해결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아마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난 12일 9번째 노란 조끼 시위가 있고 사흘 지난 후 이번 주 화요일에 마크롱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 대토론회(Grand débat national)가 있었다. 노르망디의 작은 시에서 열린 토론회에 프랑스 자치단체 시장들 600여 명이 참석하였다. 마크롱은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장장 7시간의 토론회의 참석하였다. 토론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상황만 보면 마크롱은 절박해 보인다. 하지만 왜 토론장에 시장들을 불렀을까? 그는 지금 노란 조끼의 ‘마크롱은 물러나라’하는 요구에 대답해야 하지 않을까?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이 보기에 일부 시민들이 요구하는 치명적 요구에 대답하기에 자기 자존심이 상했던 것일까? 나는 그가 질레죤느 들을 초대하여 토론회를 열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명석하고 달변인 그가 이런 사태를 모를 리 없다고 본다. 그래서 시장들을 초대하여 토론회를 열고 웹사이트까지 마련하여 (Le grand débat national 검색하면 볼 수 있다) 말로 문제를 풀어보자고 체스 쳐를 취하고 있다. 노란 조끼와 프랑스 시민들은 마크롱의 이런 요청에 반응을 할까?
시위대는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지난 토요일 처음 개선문이 위치한 별 광장과 샹젤리제 거리를 나가 살펴본 바로는 그렇다. 조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광장으로부터 12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길목엔 모두 무장 경찰과 국가 헌병대가 살수차, 장갑차를 동반하여 배치되어 있다. 오직 한 곳 샹젤리제에만 시위를 허용한 것이다. 하루 종일 광장과 샹젤리제 가로는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었다. 저녁 땅거미가 내리자 개선문 앞의 물대포와 차량 수십대를 동원한 경찰들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샹젤리제 거리 동쪽 방향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전술적으로 시위대가 다시 별 광장을 차지하려면 일군의 사람들을 동원해 11 방향의 가로 중 하나를 선택해서 다시 밀고 들어오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노랑 조끼 시위대는 조직되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되지 않은 힘은 오히려 더 다루기 어렵다. 누가 조직하지 않았고 누구도 동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은 무력으로 오합지졸 이들을 해산시키기에는 용이하다. 하지만 그들의 자발성을 제어할 방안이 없다. 전국의 주요 도시의 주요 상징 거리로 스스로 걸어나오는 이들의 시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마크롱의 국가 대토론회 장으로 시민들이 몰려가 말 잔치를 벌일 것인가, 아니면 지난주 보다 더 많은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인가? 민주주의가 말의 향연이며 조정 과정을 거친 타협의 산물이라 보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나는 마크롱이 이 정도로 프랑스 시민들의 마음을 돌려세우기 어렵다고 느껴진다. 따라서 아직은 후자가 우세하리라 본다. 나는 다가오는 토요일 1월 19일 시위에도 시민들의 표정을 살피러 샹젤리제 거리로 나갈 것이다.
2019년 1월 13일에 쓰다.
오늘의 사족 1. 샹젤리제의 거의 모든 상점이 토요일 문을 닫았다. 나무 합판이나 그물 철망으로 쇼윈도와 출입구를 가리고 있다. 하나 예외가 에르메스 매장이다. 그들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환하게 불 밝힌 매장은 그들의 자존심으로 읽힌다. 불 끄고 나무 합판으로 방비 태세를 취한 다른 매장과의 대비가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