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점심 식사
출발 준비가 분주하다. 7kg의 짐을 노새가 실어준다 했는데 어떻게 하나 보니 손가락 두 개만 한 디지털 저울을 가지고 와서 정확하게 잰다. 노새 등에 얹어 갈 만한 튼튼한 가방을 나눠준다. 미리 실을 짐을 분류해서 패킹해 와서 가방에 여유가 있는데 옆에 있던 아가씨는 짐이 넘쳐 난다. 내 가방에 좀 나눠서 넣어줄까 했더니 괜찮단다.
가이드가 와서 정확하게 잰다. 내것은 5.5kg 미소를 짓는다. 옆에 아가씨 가방은 중량 초과다. 산 사람들은 봐주지 않는다. 그랬다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친구는 마침 출발지에서 묵었던 터라 짐을 빼서 프런트에 맡기고서야 겨우 무게를 맞출 수 있었다.
가이드가 준비한 16명 점심을 각자 나눠지고 출발. 두 시간 오르막 올라 Col de Balme 고갯마루 도착.
2200 고지, 프랑스와 스위스 경계 풀밭에 점심 식탁이 펼쳐졌다.
이번 트레킹에 함께 동행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모두 마담이어서 긴장했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가이드 둘 중 한 명이 남자이고 프랑스 친구들 중에 부부로 보이는 한쌍이 있어 우리 팀 16명 중 셋이 남자다. 덕분에 어젯밤 잘 잤다.(확실히 마담들은 조용하게 잔다) 11명 자는 도미토리가 적막하기 그지없다.
펼쳐 놓고 먹는 점심이 너무 평화로워 밥 먹다 말고 한컷 찍었다. 사실 밥은 아니고 빵과 치즈 그리고 콩을 주재료로 한 샐러드 그리고 후식으로 물롱(서양 참외)과 비스킷이었고 산행하면서 먹는 점심은 7일 내내 엇비슷했다.
찍은 사진을 보다 피식 웃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재해석되어 다시 그려져야 하리. 그림 속 남자 둘을 발가벗기고 정면을 응시케 하는 풍자와 도발이 왜 없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사족 1. 지난번에 쓴 ‘모든 선천적 후천적 선호’에서 ‘모든’은 철회한다. ‘대부분’으로 바꿔야 맞다. 나는 선민주의도 반유대주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28000보, 17.1km, 208층. 첫날 트레킹 기록이다.
3. 도미토리에 베드가 11개 3개 있는 방 두 개가 배정. 동작 빠른 세명은 일치감치 작은방에 자리 잡았고 나머지 11명의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베드 쓰려고 마지막에 입실. 아뿔싸..
베드 중 세 개만 싱글이고 나머진 더블. 졸지에 생면부지 아가씨와 한 베드에 동침할 처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