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블루베리
트레킹 이틀째 코스는 어제 묵었던 Hotel col de la forclaz에서 champex val d’Arpette까지 점심 및 간식시간 제외하고 여섯 시간
16km, 25000보 왼쪽 발바닥이 어제 보다 상태가 좋아 스틱 꺼내지 않았으나 마지막 30분 오르막은 힘들다.
점심 전에 들러 살구 파이를 맛나게 먹은 보방 산장은 해발 1987.. 난 왜 이 숫자만 보면 짠해지고 먹먹하고 그러나 모르겠다.. 실은 너무 잘 알지만 정면으로 응시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지난봄 한국으로 출장 갔을 때 마침 영화 1987이 개봉했을 때였다. 나는 극장 간판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였다. ㅠㅠ 언제였던가 신촌로터리에 아직 살아남은 오프라인 서점 홍익문고에서 서성이다 당시를 담은 사진집이 우연히 눈에 띄어 펼쳤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제와 다른 좀 더 와일드한 느낌이 있는 곳으로 점심 식탁이 차려졌다. 메뉴는 비슷.. 과일이 맛없는 유럽 사과로 바뀌고 치즈 종류가 달라졌다. 식사 후 햇살은 따갑고 시간은 좀 남고 그래서 바로 옆에 있던 2미터쯤 되어 보이는 바위에 올랐다.(사진에 보인다) 괜한 짓 한 것 같다. 내려오기가 마땅찮아 위에서 한 오분 서성대다 겨우 땅바닥과 조우하다. 하고 싶다고 다 덤비다간 이런 꼴 난다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ㅉㅉ
에딘버러 출신 아가씨들이 점심 먹고 무리 지어 움직이자 어제 오지랖 넓은 프렌치 마담이 소리친다. Don’t pee on my blueberries!
그러고 둘러보니 사방이 블루베리 천지다. 몇 알 따서 디저트로. 작지만 생글 탱글 하다. 등잔 밑이 어둔 건지 내가 무딘 건지.. 가까운 곳에 보배들을 지천에 두고 바위 위에 올라가 무얼 찾은 건가? 한국으로 바캉스 떠난 가족들은 잘 있나 갑자기 궁금하다.
오늘의 사족 1. 무슨 여유가 남아돌아 가족들이 한국으로 바캉스를 떠난 건 아니고, 일 년 오픈으로 비행 편 예약해 와서 안 가면 날릴 판이라 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2. 산행 마무리는 언제나 맥주 한잔.. 작은 건 3유로 큰 건 6유로로 어제 포클라즈 산장에서와 가격이 비슷하다... 한 시간쯤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몽블랑 산자락을 바라보다..
3. 오늘 도미토리는 6인실 2개, 2인실 하나다. 문 밖에서 두리번거리며 서서 ‘Would you’ 어쩌고 하려는데 역시 마음씨 착한 에딘버러 출신 메건이 부른다. ‘헤이 영, 컴인’..
친절한 에딘버러 출신의 와일드한 친구들이 방에서 반갑게 맞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