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에보시
어쩔 수 없이 오스카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자기 몸무게에 20%나 되는 짐을 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일이 노새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
파레토 최적
다른 사람의 행복(또는 편익)을 감소시키지 않으며 어떤 이의 행복을 증가시킬 수 있는 상태를 파레토 적정이라 한다. 많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기본 논리가 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사회란 것이 복잡한 이해당사자가 서로 엉켜있어 무 자른듯한 명쾌한 해결방안이 나올 리 만무하다.
오스카 친구인 다른 트레킹팀의 암 노새가 바위 산길 내려오다 한쪽 발이 살짝 접질리며 쓰러질 듯 한 모습을 보고 난 후 나는 우리 팀의 노새 잡이를 비롯해 노새 앞뒤에서 걷는 트레커들까지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두 시간 정도 오스카 뒤에 붙어 오르막 비탈길과 빙하지대를 통과해보니 사람 걱정해야지 노새 걱정은 필요 없겠더라.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튼튼하고 균형 잡히고 지치지 않는다.
낭떠러지를 끼고 폭이 일 미터도 되지 않는 산길을 보따리 열여섯이나 지고 가는 오스카를 보며 지브리 스튜디오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에서 비가 억수처럼 내리는 날 등짐 지고 성채로 오르는 검은 소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레이디 에보시와 그녀들이 일구어 가는 세상엔 수컷들은 의사결정권이 없다. 에보시는 불가촉 영역에 있는 자들에게 삶의 목적과 희망을 준다. 에보시의 품에서 그들은 살아 남고, 그들이 만든 정교한 총포는 생명을 관장하는 대지의 신의 목을 날리는데 쓰이고..
오늘의 사족 1. 베드 두 개 있는 방은 으레 프렌치 부부에게 돌아갔고, 스코틀랜드 출신 레이디들이 환대해준 도미토리에서 호주 출신 마드모아젤 두 명까지 모두 여섯이 한방을 쓰게 되었다.
2. 메건이라는 친구가 벙커침대 아래칸 내가 위쪽을 쓰기로 하다. 저녁식사 마치고 일어나는데 어제 그 오지랖 마담이 이제 네가 그 방에서 가장 약한 놈이다 그러길래 내가 그랬다. 나는 레이디 다섯이랑 같이 있는 여기 남자들 중 strongest 다. 메건이 눈웃음을 지으며 ‘See you in bedroom’ 그러자 그 마담의 남편인 필립이 눈꼬리를 치켜뜨며 ‘으흠 으흠’ 그런다. 모두들 한바탕 파안대소를 터뜨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I’ll be on the top’ 그러자 우리 방 레이디들이 까르르 웃는다.
3. 이탈리아로 넘어와 머무른 Elena 대피소는 2061미터다. Digitally disconnected 되어 잠시 위로가 되었으나 밖으로 나오니 신호가 잡힌다. 이런!! 단절이 이렇게 어렵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