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 살면서 이 도시에서 한나절 보내리라고는.. 2018년 8월 10일
바젤, 살면서 이 도시에서 한나절을 보내리라곤 꿈에서라도 상상한 적 없다.
어젯밤 늦게 파리에서 탔던 버스는 새벽에 바젤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우선 손목 아대가 필요하다. 잠결에 옆자리가 비어 옮기다 손목을 삐끗했다. 어디든 첫인상이 중요하지.. 바젤 역 안에 약국 약사는 친절하고 영어를 잘했으며 고장 난 내 손목에 적당한 아대를 골라주었으며, 게다가 미모까지..
카페인이 필요하다. 역전 카페에서 그란데 사이즈 커피를 시키고 늘 하던 바대로 검색을 시작한다. 몇 군데 갈만한 곳이 보인다. 대충 루트를 짜고 있는데 옆자리 앉은 친구가 바젤에 왜 왔냐고 묻는다. 이렇게 시작한 대화 덕에 바젤을 사랑하게 될 줄이야.. 강으로 가보란다..
강수욕
점점이 강물에 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가? 바젤의 여름은 역시 강수욕이다. 도시를 관통하는 라인강은 폭도 상당, 깊이도 상당. 아침 열 시부터 강변에 보이기 시작하던 젊은 연인, 늙은 연인, 어린 연인, 가족단위 나들이객에 또래 친구들 무더기, 때론 우아한 솔로.. 오후에 접어드니 여름 강을 즐기기 위한 시민들이 떼 지어 나오고 해 질 무렵엔 강물 위에 마련한 무대에선 밴드 공연까지 펼쳐진다!!
1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오리 가족을 만난 건 강변을 어슬렁 거리며 강에 떠있는 연인들의 물놀이, 사랑놀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다.
여우와 어린 왕자가 길들여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지.. 마다가스카르 동물들은 사람들을 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동네 한번 가봐야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 바젤의 오리들도 사람을 피하지 않네. 가져온 간식거리를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새끼 오리들이 너도나도 몰려와 성황이다. 엄마는 근처에 맴돌 뿐 아기들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말리지 않는다. 따로 몇 조각 떼서 엄마 앞에 주었다. 아마도 바젤 사람들과 오리들 사이에는 서로를 친구나 이웃으로 여기는 관계가 형성되었나 보다. 오리를 친구로 만든 이곳 사람들의 심성이 급 좋아지기 시작한다.
1
퐁텐블로 파
여기서 퐁텐블로파 작품을 만날 줄이야! 이건 너무 자세히 풀면 재미없으니 나중에 루브르에 걸려 있는 것하고 비교해서 언제 한번 다시 쓸 일이 있을 것 같고 그냥 지나기 아쉬우니 살짝만 보여주는 걸로.
더불어 피카소 할배가 그린 ‘쿠르베 이후 세느 강변 아가씨들’ 앞에서도 한참을 바라본다. 피 할배가 굳이 쿠르베를 작품명에 언급한 이유가 있을 텐데 누가 알면 설명 좀.. 게다가 말로만 듣던 파울클레까지 작품까지 보았으니 이만하면 바젤을 알지도 못했고 한나절 뭘 하면서 보낼까 했던 아침 녘의 부질없던 생각에 살짝 바젤한테 미안함이 들 지경이다!
Code name WHITE
이제 다시 버스 타러 가야지 하며 대충 감으로 가고 있는데 저 너머 흰색 한 무리가 보인다. 시간은 남았고 바젤 사람들은 뭐 하고 노는지 궁금도 하고.. 족히 이백 명은 돼 보인다. 모두 흰색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추고 야외에 차려진 파티장에서 흥겹다. 친구들과 카페 빌려서 이러고 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사족 1. 산행도 아닌데 삼만보나 걸었네. 오늘 밤 버스에선 잘 잘 수 있으려나?
2. 손목은 아대를 둘렀더니 지내기에 불편하진 않다. 이대로 잘 버텨주기만 하면..
3. 이 글을 먼저 올린 곳에서 친구들의 댓글이 ‘쿠르베 이후 세느 강변 아가씨들’은 피카소의 쿠르베에 대한 오마쥬라는 설명이 금세 붙었다. 높은데 트레킹 오니 접속도 어렵고 겨우 신호가 잡혀도 검색할 맘의 여유가 없었는데 집단지성의 덕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