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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21.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11

Sole vs. Soul

왼쪽이 늘 문제다. 허리도 왼쪽이 늘 시원찮고 걸을 때 뒤에서 잘 살펴보면 왼발 움직이는 모양새가 좀 다르다. 이번 순례에서도 5일 차부터 왼쪽 발에 먼저 신호가 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작년 몽블랑과 돌로미티도 별 탈없이 잘 다녀왔으니 산행도 아니고 평지를 걷는데 무슨 대수이겠나 싶었다.
7일 차에 왼발 뒤꿈치에 작은 물집이 잡혔다. 이틀 뒤꿈치에 하중이 실리지 않도록 조심했더니 이번에 왼쪽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다행이라면 뒤쪽의 물집은 사라져 간다. 나는 물집이 생기면 바늘과 실로 물을 제거하라는 처방을 따르지 않는 편이다. 그럼 반드시 물집 생긴 피부가 떨어져 나가고 다시 재생되는데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기간 동안 부위를 관리하기가 만만찮다. 물집을 그냥 잘 두면 잡힌 물이 다시 흡수되고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하지만 일반화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것이 다르기에..


Digitally connected
아침 일찍 나왔다. 어젯밤 리오하 와인 마시며 만난 바르셀로나 출신 페레그리노(순례자의 스페인식 발음)가 우리 일행이 하루에 30킬로 조금 더 걷는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레이스 하듯 산티아고로 달려가지 말라고 한다. 충고가 아니라 진심 걱정되어하는 말이다. 덕분에 10세기 이후 까미노 형성과정, 까미노 밤길 걷기, 도가도 비상도부터 DMZ 평화올레까지 스페인어, 독일어,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모여 영어로 대화를 했다. 얼마나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오늘 어제보다 덥다 하여 출발이 이르다. 기실 9시부터 컨퍼런스콜이 예약되어 있어 다음 마을에 가서 적절한 장소를 찾아야 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와이파이도 잡히고 요기도 할 수 있는 카페가 8시 30분 눈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사흘간 동행하던 친구들과 헤어졌다.



까미노를 핑계로 회의를 미루거나 빠지거나 할 수 있었겠지만 이메일과 컨퍼런스콜로만 진행해오던 연구팀 중에 한 친구가 유학길에 오르게 되어 마지막 회의 참석이라 그간 디지털리 맺어온 정리를 생각하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밥 한 끼, 술 한잔 나누지 못했지만 동지 같고 후배 같고 그런 감정이 드는 친구다. 생산적인 토론이 이어지는 바람에 회의가 10시 넘어 끝났다. 걷기 가장 좋은 시간이 그렇게 사라져 갔다.


자글자글한 태양 속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영쿡하고 누군가 부른다. 체코 출신 마틴이 으레 그 좋은 웃음을 지으며 걸어온다. 그는 사흘 차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 만났다. 저녁 미사에 누가복음 선한 사마리아 부분을 그가 영어로 내가 한국어로 읽었다. 그는 체코에서부터 들고 다녔던 카메라를 그날 오후 어디다 두었는지 모른다고 무심히 이야기했다. 다음 날 아침식사 하러 내려가다 만난 그의 손엔 갈색 가죽 케이스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할렐루야를 외쳤다. 비록 내가 그렇게 외치기는 했어나 신심이 그리 깊지 않다는 걸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다 알 수 있으리..  

어느 마을에선가 그늘에 앉아 어제 사서 들고온 납작 복숭아를 꺼내 마틴과 나누어 먹고 일어서는데 바로 옆 길 이름이 Calle S. Martin(성 마틴 길)이다. 자기 이름을 발견한 그는 좋아라 하고 갈색 케이스에 들어 있던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순례자에게 발바닥은 영혼과 같은 존재이다. 발바닥에 문제가 생기면 내딛는 걸음걸음 고통을 동반한다. 마틴은 쉴 때마다 발바닥을 쿨다운해야 한다며 트레킹화와 양말을 벗고 그늘과 시원한 바람에 발바닥을 진정시킨다.

진정 Sole이 Soul이다.

오늘의 사족 1. 발을 씻겨주지는 못할망정 잘 주물러 주기는 하자. 사랑이 샘솟을지도..
2. 이름을 불러줄 수 없는 건 먹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오늘 이름 모를 그대를 여러 개 따서 먹었다. 새콤달콤 에너지 충만이다.


3. 점심 먹으러 들어왔다 에스뜨레이야 유혹에 넘어갔다.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동행들과 만나기로 한 마을 전에 머물기로 하다. 식당이 마침 호텔이었고 다행히 빈 방이 있단다. 찬물에 샤워하고 복대도 풀고(9일 만에 처음 홀로 방을 쓰다) 씨에스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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