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안트워프의 추억>
필자가 한국은행 재직시절 벨기에 브뤼셀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브뤼셀 북쪽의 안트워프(Anywarp)라는 항구도시에 종종 놀러 갔다.
안트워프는 중세 시대에 플란더스(불어로는 플랑드르) 지방이라 불리던 네덜란드의 일부였다. 벨기에로 독립된 지금도 언어는 네덜란드어가 공용어로 되어 있다. 안트워프에는 다이아몬드거래상, 다이아몬드 가공업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다이아몬드지구가 있다.
어느 날 필자는 다이아몬드를 취급하는 보석가게에 들렀다. 일을 본 후 거리로 나서자, 시나고그(Synagogue; 유대교 교회당)를 나오는 검은 옷의 유대인 무리들이 보였다. 그 때, 왜 유대인들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귀국하여 유럽의 향수에 젖어 유럽 역사책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왜 네덜란드로 대거 몰려 들었는지 하는 이야기를 찾아 낼 수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금융업을 전문화한 배경>
스토리는 이렇다.
중세 카톨릭에서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금업을 터부시하였다. 반면 유대교에서는 허용되었다. 이에 따라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부업은 유대인의 전유물이 되었다.
중세시대에 카톨릭 군주들은 유대인의 재산을 노려 때때로 유대인을 박해하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해 여러 나라로 도피하여 다녔다.
네덜란드는 상공업과 무역업이 발전하면서 16세기 후반에 자유와 관용의 독립국가를 형성하였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네덜란드로 유입되었다.
한편, 여러 나라로 도망 다니던 유대인들은 재산 보전수단으로 보석을 보유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서도 다이아몬드였다. 안트워프로 들어 온 유대인들이 다이아몬드 거래상과 다이아몬드 가공업을 발전시켰다.
<근대이후 금융업과 사업가로 두각>
한편, 근대 이후 유대인의 대부업은 금융업으로 발전하여 왔다. 유럽에서 금융제국을 창설한 로스차일드(Rothchild) 가문, 세계 제일의 투자금융그룹을 창설한 마커스 골드만(Marcus Goldman) 등이 그들이다.
현대에는 세계 제일의 SNS기업인 페이스북(Facebook)을 창업한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 세계 최고의 펀드매니저 조지소로스(George Soros), 세계 제일의 인터넷포탈업체인 구글의 창업자 래리페이지(Larry Page) 등 세계적인 기업가, 금융투자자 등을 배출하였다.
<유대인들이 금융업과 사업가로 성공하는 비결>
유대인들이 금융경제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세계적인 부자가 많은 비결은 무엇인가?
유대인의 하브루타 경제교육이론에 의하면, 유대인 가정에서는 밥상머리 대화가 보편화되어 있다고 한다. 밥상머리 대화는 자녀들의 질문, 부모의 대답 그리고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경제문제를 포함한 여러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자녀들은 논리적 사고훈련과 부모들의 경험적 지혜를 배우게 된다. 학교에서는 전반적인 지식교육을 담당하는 데 반해, 가정에서는 자녀의 이성적 사고훈련과 인성을 담당한다고 한다.
실제, 필자가 당시 브뤼셀 주재원 시절 자녀들을 현지 국제학교에 보내면서 경험한 바, 학교교육은 인문사회자연의 지식교육을, 자녀의 올바른 인성과 사고훈련은 가정에서 하도록 분담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자녀의 인물됨됨이는 결국 부모와 자녀가 같이 하는 대화와 여러 활동을 통해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들이 재테크와 자기경제관리를 배우는 방법도 결국은 부모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간 밥상머리 대화가 중요한 이유라 하겠다. 이에 따라 필자도 자녀들이 중고등학생 시절 매주 토요일 저녁식사를 부모와 함께 하는 것을 가정의 원칙으로 삼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