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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기 Jan 17. 2022

돌아온 쿠티뉴, 오래도 미워했다.

기구한 인생이다.


2008년부터 리버풀을 응원하면서 수많은 선수들을 만났다. 영입되어 들어온 새로운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은퇴를 하거나 이적이 되어 나가는 선수들도 많이 있었다. 보통 새로운 선수를 만날 때는 반갑게 맞이하지만 떠나는 선수들에 있어서는 아름다운 작별이 되지 못하는 경우들도 더러 있었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페르난도 토레스, 루이스 수아레스, 라힘 스털링 등, 리버풀에서의 엄청난 활약이 묻힐 만큼 불편히 안녕했던 선수들이다. 워낙에 영향력이 크고 애정을 쏟은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불편한 이적은 화딱지도 나고 속상한 마음이 꽤 오래가더라. 그런 마음이 가장 컸던 선수가 내게는 필리페 쿠티뉴였다.


어린 시절부터 인생을 걸은 축구 선수들 중에도 프로 무대, 그것도 세계 최고의 리그라 불리는 곳에서 뛰는 선수들은 극히 일부다. 우리도 어릴 때 꿈을 꾸다 보면 '나의 최종 목표는 이거 이거다.'라는 게 있듯이 많은 선수들에게도 '드림 클럽'이 존재하는 듯하고, 때로는 드림 클럽으로 이적하기 위해 소속 구단과의 불화를 감수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세계적으로 유망했던 쿠티뉴는 2013년 1월, 리버풀로 왔다. 그 당시 리버풀은 베테랑 중앙(공격형) 미드필더의 영입을 추진했었고, 당시 인테르에서 뛰고 있던 웨슬리 슈나이더와 강력히 연결되고 있었다. 선수 영입 소식이 점점 공식적으로 들려올 때도 인테르의 미드필더라고 보도되었고, 베테랑이라는 보도 사이에 신성 선수라는 소식이 간혹 섞여 있기는 했지만, 리버풀 팬들은 결국 슈나이더가 올 줄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리버풀 품에 안긴 선수는 슈나이더가 아니라 쿠티뉴였다.


유망하기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인테르에서 기복 있는 시즌들을 보내고 두드러지는 활약 없이 임대를 떠돌다, 영입되는 시즌 역시 별다른 활약이 없었기에 리버풀 팬들은 쿠티뉴의 영입을 미심쩍어했지만 쿠티뉴는 영입된 순간부터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보여줬고 리버풀 팬들의 마음을 금세 훔쳤다. 피지컬이 약하고 경기를 읽는 노련함이 부족했지만 그가 가진 장점만으로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고,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리버풀에서의 행복하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쿠티뉴에게도 힘든 시간 끝에 자기만의 팀을 찾은,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쿠티뉴는 해가 갈수록 발전해갔고 그 사이에 루이스 수아레스, 라힘 스털링 같은 팀 내 핵심 선수들이 떠나면서 리버풀 팬들은 쿠티뉴를 많이 의지했다. 핵심 선수들이 이적할 때에도 쿠티뉴는 팀에 대한 애정을 늘 보여줬으며 특히 위르겐 클롭(현 리버풀FC 감독) 감독의 리버풀 부임 후에는 가지고 있던 단점들까지 보완하며 소위 말하는 '월드클래스'의 반열에 진입했다는, 선수로서의 최고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구단은 쿠티뉴에게 활약에 따른 보상으로 그의 공헌을 인정해줬다.


그러다 2017년 여름,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가 쿠티뉴를 영입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쿠티뉴가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이면서 바르셀로나의 영입 소식은 종종 있었지만 2017년 연초에 장기 재계약을 체결했고, 쿠티뉴도 리버풀에서 행복하다는 코멘트를 줄곧 해왔기 때문에 리버풀의 구단, 팬들 모두 쿠티뉴를 지키는 데에 자신이 있었다. 리버풀은 바르셀로나의 매우 적극적인 관심에도 강경하게 대응하며 이렇게 이적시장이 끝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쿠티뉴가 리버풀 구단에 이적 요청서를 제출했다는 속보와 쿠티뉴가 리버풀을 바르셀로나로 가고 싶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단은 물론, 나를 포함한 수많은 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너무나 큰 애정을 갖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충격이 컸지만, 십수 년 동안 해외축구 판에서 이런 상황들을 여러 차례 봐왔고, 선수이기 전에 한 사람이기 때문에 전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이적시장이 마무리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더라도.(보통 거물급 선수들의 이적은 대체자를 영입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기에 이적시장이 닫히기 직전에 이런 선언은 구단 입장에서 대처가 매우 어렵다.)


다만 내가 너무 쇼킹했던 건, 그의 인터뷰였다. "클롭(리버풀 감독)과 리버풀이 나와 우리 가족을 매도했다." "리버풀에서 다시는 뛰고 싶지 않아." 두 인터뷰는 시간 차이가 있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훅을 맞고 두 번째 인터뷰에서 나는 K.O를 당했다. 리버풀에서 다시는 뛰고 싶지 않다는 말은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얼얼하다. 수년간 희로애락을 함께한 선수가 어떻게 이런 말을.. 


애끓는 2017년 여름 이적시장이었지만, 어쨌든 구단은 쿠티뉴를 지켰다. 그리고 쿠티뉴는 다시는 뛰고 싶지 않다던 리버풀을 위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본인의 행동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래, 그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돌아왔으면 됐지. 큰 상처를 받았어도 떠나지 않은 것으로 고마운, 쿠티뉴는 우리에게 그런 선수였다. 그렇게 다시 리버풀과 쿠티뉴는 행복을 나누기 시작했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2018년 겨울 이적시장이 열린 1월이 되자마자 쿠티뉴는 갑자기 등 부상을 호소하면서 경기에 결장하기 시작했다. 경기 중에는 별 일이 없었고, 시기가 시기인지라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듯했지만 의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여름과 같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쿠티뉴가 리버풀 선수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쿠티뉴는 리버풀을 위해 다시 뛸 의향이 없다고 했어.(쿠티뉴 지인)" 충격. 새해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쿠티뉴는 활짝 웃는 모습을 하며 바르셀로나로 공식 이적했다. 충격적이었다. 그가 너무너무 미웠다.


내가 리버풀의 팬이라는 걸, 나의 지인들은 거의 모두가 안다. 유난히 사연 많은 클럽인지라 해외축구 팬들 사이에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게 리버풀인데, 축구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나에게 종종 이렇게 묻는다. 리버풀에서 생떼 부리고 떠난 선수들 중에 누가 제일 밉냐고. 그러면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쿠티뉴"라고 말한다. 수년이 흘렀어도 리버풀을 위해 다시는 뛰고 싶지 않다는 말이 유독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쿠티뉴는 역사상 최고급의 이적료로 이적한 만큼 바르셀로나 팬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시작을 보여주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저조한 활약에 결국 팀에서 처분 대상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그렇게 가고 싶어 했으면 잘해야지. 아니, 잘했으면 또 속이 쓰렸으려나. 어쨌든 바르셀로나에서 4년간 적응하지 못했던 쿠티뉴가 프리미어리그 아스톤 빌라의 감독이 된 제라드 품에 안겼다. 리버풀의 최고 레전드 제라드, 선수 시절 리버풀에서 함께 뛴 제라드-쿠티뉴가 다시 만난 건 이게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오늘 새벽에 쿠티뉴의 프리미어리그 복귀전이 있었다.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쿠티뉴에게 제라드는 "너의 실력은 이미 충분해. 너는 모든 걸 갖췄고, 그저 너를 사랑해줄 팬들과 그들의 응원이 필요할 뿐이야. 마음껏 즐겨라."라고 했단다. 그리고 쿠티뉴는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골 1어시스트로 팀의 무승부에 크게 기여했다. 심지어 상대팀은 리버풀의 최대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참, 만감이 교차한다. 그렇게 미워했던 선수였는데 퍽퍽해진 모습에 짠하고, 골 넣고 좋아하는 모습에 또 짠하고. 바르셀로나에서 제대로 뛰지도 못한 쿠티뉴에게도 축구가 많이 그리웠을 거다. 팬들이 쿠티뉴를 보내며 슬퍼했던 마음과 드림 클럽에서 실패한 그의 마음 중 어느 마음이 더 슬프랴. 


이제는 쿠티뉴를 그만 미워하려 한다. 시간이 갈수록 미워하던 마음도 수그러들긴 했지만, 그 불쾌했던 스토리마저도 지난 일로 툴툴 털어버리려 한다. 많이 사랑했던 선수, 그 진한 추억이 어쩌다 악연이 되었지만 미워할수록 나의 마음도 힘들더라. 티뉴, 쿠티뉴. 새로운 곳에서 다시 미소 지으며 날아오르길. 너와의 행복했던 청춘이 어디 가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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