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제 한국 가는 비행기 탔어.”
6개월 간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고 노르웨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는 반가운 딸의 문자가 왔다. 비행기를 탔다는 딸의 문자를 보자마자 이제 며칠만 있으면 보고 싶은 딸을 볼 수 있구나 하는 설렘과 즐거움이 확 밀려왔다. 목젖까지 차오르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지 참 오랜만이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물리적 제약을 이유로 꾹꾹 눌러놓았던 그리움이 갑자기 튀어 올라와 강렬한 감정에 압도되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딸이 도착하면 어떻게 일정을 조율해서 마중을 갈지, 딸이 제일 먹고 싶어 할 집밥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던 중 다시 딸의 문자가 왔다.
“엄마, 나 코로나 확진됐어.”
불과 몇 시간 안에 최고로 즐거운 상황과 최악으로 괴로운 상황을 번갈아가며 만난 느낌이다. 딸은 오슬로에서 출발, 바르샤바에서 환승하여 인천공항으로 올 계획이었다. 바르샤바에 도착한 딸은 목이 따끔거리고 아파서 서둘러 PCR 검사를 했고, 곧 양성 확진되었다는 결과를 받은 것이다. 딸은 하룻밤만 쉬었다 가면 되는 폴란드라는 나라에 발이 묶였다. 설상가상으로 오슬로에서 수화물로 부친 트렁크도 분실되어 짐조차 찾지를 못했다. 머리가 띵해지는 코로나 확진으로 받은 1차 충격에 트렁크 분실이라는 2차 충격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기대하고 계획했던 일들이 갑작스레 엉뚱한 방식으로 ‘스톱’되었다. 딸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기가 막히고 실망스럽고 공포스러웠을까?
살다 보면 ‘이게 뭐지?’ 하게 만드는 어리둥절한 일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때면 마음은 쿵쾅거리고 머리는 하얘지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정신이 하나도 없어진다.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놓쳐 버리기 십상인 순간에 느껴지는 비현실감이 있다. 지금 내게 일어난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현실이 흐릿해지고, 머리가 멍해지고,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침이 마르고, 고립된 느낌이 들고, 마음이 울렁거리면서 울고 싶기도 하고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특히 딸의 경우처럼 익숙한 공간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마음이 여러 갈래로 흩어질 것이다.
흩어진 마음을 다시 모으는 작업이 ‘마음 챙김(mindfulness)’이다. 마음 챙김을 위해 도움이 되는 생각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만 가지 불행한 일들 중 어떤 일이 나의 삶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컨대 지구 상의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은 피해 가기를 바랐던 코로나에 감염되었고, 나도 그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동안 심각한 불행에 빠지지 않고 그럭저럭 잘 살아왔던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참 감사한 행운이었구나 새롭게 조망하는 것이다. 내게는 부디 좋은 일만, 행복한 일만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 얼마나 큰 욕심이고, 이룰 수 없는 꿈인가를 실감하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다시 모으기 위해 심호흡을 크게 하고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해 보자. 딸의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견디기만 하면 몸은 건강하게 회복될 것이고, 비행기표는 또 구할 수 있을 것이고, 반드시 집에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다. 다만 이 믿음을 실현하는 데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믿음과 기다림 사이 정해진 시간 동안 겪게 되는 고통과 부담, 시행착오는 그저 겪어내기만 하면 된다.
딸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상 속에서 만다라를 그려본다. 먼저 원의 중심축에는 집에 도착해서 가족과 함께 행복해하는 딸의 얼굴을 둔다. 중심축의 사방에는 역경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는 상징으로 가시덤불과 딸이 좋아하는 색의 환한 꽃들을 정렬시킨다. 가까운 미래에 건강하게 회복된 모습으로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만다라를 완성한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미래의 어느 날에는 가혹해 보이는 지금의 경험에 숨겨져 있는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음미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우리 인생은 우리의 생각이 만드는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