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던 때가 있다. 지금은 가물가물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누구나 한 번은 통과해 왔을 유아기가 바로 그런 때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본능적으로 생물학적 심리적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산다. 아기에게는 원초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하여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한 사람의 절대적 도움이 필요하다. 언제나 자신을 환영해주고 존재의 가치를 확인해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아기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외부에 신호를 보낸다. 아기의 울음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아기는 울음의 높낮이, 강도와 리듬으로 마음을 표현하며, 이를 민감하게 읽고 반응해 주는 보호자로 인해 안심한다. 이렇게 경험한 사랑을 바탕으로 아기는 긍정적인 자아상과 외부세계를 신뢰할 수 있는 마음을 형성한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기에게 무조건적 관심과 사랑, 돌봄을 제공하는 양육자가 이토록 중요하다.
아기가 드디어 직립보행으로 이동의 자유를 경험하는 걸음마기가 되면 놀라울 정도로 적극적인 세상 탐색을 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신의 두 다리로 걸으면서 눈에 담는 세상은 얼마나 신기할까? 아기의 입장에서 처음 경험하는 ‘와!’하게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 축하해주고, 반겨주고, 웃어주는 성인의 지지와 응원은 호기심을 강화하고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한다. 이와 동시에 아기가 하면 안 되는 말썽 목록도 늘어나기 때문에 단호한 훈육 또한 필요하다.
데이빗 섀논의 그림책 [안돼, 데이빗!]의 책장을 펼치면 왕성한 호기심으로 비롯되는 데이빗의 저지레 대 잔치가 휘황찬란하게 펼쳐진다. 줄곧 등장하는 데이빗을 따라다니며 행동을 저지하는 엄마의 말은 “안돼, 데이빗!”, “안된다니까”, “안된다고 했지”이다. 어린 시절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의 도망자와 추격자의 아슬아슬 경주처럼, 기발한 말썽을 끊임없이 창조해 내는 데이빗과 그것을 저지하는 엄마의 뒤쫓음이 숨 가쁘다.
“내가 말썽꾸러기여도 나를 사랑해 주실 거예요?”
“그럼. 사랑하고 말고. 널 많이 사랑해. 그래서 너에게 '안돼'라고 하는 거야.”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도록 해주면서도, “안돼”라는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할 수만 있다면 아이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아이는 호기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더욱 안전하게 세상을 탐색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규칙을 배울 수 있다. 만약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안돼”라는 한계를 그어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가끔 다 큰 어른에게서 유아기 아이들의 자기 중심성을 목격할 때, 헤르만 헤세의 작품 [어거스터스]의 주인공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아기를 갖지 못한 부부가 간절한 기도 끝에 ‘어거스터스’라는 아들을 얻는다. 어거스터스가 태어나기 전 한 노인이 엄마의 꿈속에 나타나 아들을 위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엄마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소원을 말한다. 엄마의 소원은 이루어져 아이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서도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그의 주변에는 더 이상 그를 사랑해 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아 홀로 외롭고 쓸쓸한 노년의 시간을 견딘다.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삶, 받은 사람을 흘려보내지 않는 삶은 마치 유아기에 갇혀 성장을 멈춘 삶과도 같다. 자기 중심성은 유아기의 일시적이고도 제한적인 사고방식이어야만 귀여운 것이지, 성장해서까지 용납되지는 않는다. 자신만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아가 타인을 배려하고 용납하고 공감하고 수용하는 마음으로 자라나지 않는다면 관계 맺기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마냥 귀엽기만 한 시기를 통과하여 인간다움을 배우며 성숙한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안돼”를 가르쳐주는 누군가가 꼭 필요한 이유다.
아기는 걸음마기와 유아기를 통과하면서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매번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나에게만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너의 마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마음만큼 중요한 수많은 ‘너’의 마음과 부딪혀 압박과 갈등을 마주한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아이의 전형적 행동은 무엇인가? 울고, 화를 내고, 끝내 ‘내가’ 이기고 싶은 마음에 고집과 떼를 쓴다. 그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면 ‘내 말을 다 들어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는 현실이 원망스러워 과장된 몸부림을 쳐 보는 것이다.
가끔 내게도 어릴 적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불쑥 튀어나와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상처받은 나의 내면 아이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왜곡된 해석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 그랬구나” 나는 내면 아이의 마음은 다 받아주고 달래주되,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이유를 함께 찾아본다. 모든 감정은 언제나 옳고 수용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허용되지는 않는다는 단순한 이치를 깨우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안돼"는 다정한 음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