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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Aug 01. 2022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비키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욕망에 충실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빨간색 땡땡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하루 종일 냇가에서 뛰어놀던 아홉 살 적을 떠올려 본다.      


바닷가도 아닌 냇가에서 왜 나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른들은 냇가 다리 아래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깔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고, 나는 고만고만한 또래들과 어울려 부지런히 뭔가를 하고 있다. 바쁠 것 하나 없는 한가로운 오후, 아이들은 제법 진지하고 분주한 움직임으로 이런저런 놀이를 만들어 그들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냇물에 다리를 담그고 허리를 구부려 송사리 떼의 움직임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예쁜 조약돌을 색깔별로 수집하기도 하고, 모래로 밥을 짓고, 모래성을 쌓고, 땅따먹기를 하기도 한다. 강렬하고 뜨거운 볕에 빨갛게 익어가는데도 모자도 쓰지 않고, 어깨에 수건 하나 걸치지 않고, 온 얼굴에 맺히는 구슬땀이 뚝뚝 떨어지는 줄도 모른 채 순간에 몰입한다.      


걱정도 하나 없고, 부끄러움은 더더욱 없고, 눈치 볼 일도 없고, 그저 많이 웃으며 놀기 바쁜 아이들은 본능과 감정에 충실한 생명체다. 놀 것 다 놀고, 먹을 것 다 먹고 난 후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할 때쯤 뿔뿔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아이들은 쿨하게 ‘안녕’ 하며 냉큼 각자 갈길 간다. 마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어, 가장 중요한 놀이라는 활동에 온 에너지를 하얗게 불태웠기 때문에 아쉽지 않은 ‘안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꽉 찬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야 할 수 있는 담담한 ‘안녕’의 순간이다.      



이제 오랜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나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내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날들이 다가온다. 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을 건조한 태도로 신속하게 해치우며 살아왔던 기능 중심의 무거운 내 모습을 벗는다. 그토록 갈망하고 묻어두었던 꿈(want)을 찾아 떠나는 자유로운 여정이 코앞에 있다. 나는 작은 것에 기뻐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작은 것에 감탄하며, 작은 것에 미소 짓고,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얼마든지 쉬어갈 수 있는 나만의 리듬을 찾아 다시 반짝이고 싶다.     

 

“행복하다는 것은 소망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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