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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Aug 15. 2022

나의 본질을 찾아서

과연 나의 정체성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많은 역할을 다 떼고도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하나씩 늘어가는 역할을 감당하면서, 다양한 교육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집합체인데 말이다. 살아오면서 내게 주어졌던 역할, 관계 속에서 변함없이 공통분모였던 나의 특징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간섭과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외부의 통제와 지시에 ‘왜?’ 하는 거부감이 있었다. ‘왜’라는 물음에 ‘아, 그렇구나’라는 답을 얻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말만 듣고 무턱대고 동의하는 경우가 드물다. 내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는 답도 문제 해결도 유보해 둔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조언도 참조 대상일 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헛헛한 잔소리처럼 들리는 말은 곧바로 귓등으로 흘린다.     


사회적 역할 속에 가려져 있던 진짜 나의 본질을 찾아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일곱 살 이전의 나는 혼자 놀아도 심심할 새 없이 하고 싶은 것으로 하루를 꽉 채울 줄 아는 아이였다.   

   

· 딱히 언니 오빠가 놀아주지 않아도, 놀아달라고 

  보채지 않는 아이

· 말이 없고 조용한데 종일 혼자서 뭔가를 하며 

  분주한 아이

· 가족들이 나를 예쁘다고 안거나 집적거리면 

  귀찮아서 도망가는 아이

· 혼자서는  부르던 노래도 시키면 절대 하지 않는 

  아이

· 놀이에 몰입하면 반나절은 끄떡없이 집중하는 아이

· 사계절 변하는 자연 속에서 무궁무진한 놀잇거리를 

  찾는 아이

· 일찍 글자를 익혀 동화책 속에 파묻혀 있는 아이

· 동화  이야기를 ‘만약에~’라는 가정으로 끝없이 

  상상하는 아이      


일곱 살에 학교라는 곳을 가서 참 심심한 시간을 보냈다. 주어진 시간에, 선생님이 시키는 공부를 하고, 자유라고는 허용되지 않는, 지켜야 할 규칙과 테두리 안에서 흘러가는 하루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남들이 다 가는 학교는 당연히 다녀야 하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나는 매일 학교에 끌려가는 느낌으로 교문을 드나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봄날, 정말 학교 가기 싫은 날이 있었다. 내가 살던 집 앞의 동산 하나를 넘으면 초등학교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어린 꼬맹이가 매일 겁도 없이 산길을 따라 학교에 가곤 했었는데, 그날따라 학교에 너무 가기 싫었다. 나는 산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배고플 때쯤 집에 돌아왔다. 무단결석을 한 것이다. 그때 부모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를 맞아주셨다. 부모님은 내가 학교에 결석했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내게 왜 학교에 다녀오지 않았느냐고 묻지도 다그치지도 않으셨다.     


그날 이후 어린 마음에도 부모님을 속였다는 것이 내심 걸렸던 탓인지 다음부터 학교만큼은 빠지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내 생애 첫 일탈이었던 그날 하루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작고 귀엽고 당차고 무모하고 자유로운 어린 나를 ‘멋지다’ 하며 토닥이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대학에 진학해서야 나는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었다. 순전히 내가 원하는 나의 선택으로 시작한 대학 생활은 날마다 자유롭고, 숨통이 탁 트이는 기분 좋은 하루였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피할 수 없는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방어전’이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서 성취하는 ‘공격전’이었다. 주도권이 오롯이 나에게 있었다. 당시 나는 자유가 주는 기쁨과 지적 희열로 도서관을 놀이터 삼아 휘젓고 다니는 야생마였다. 마치 혼자 놀아도 종일 하나도 심심하지 않던 유년기의 야성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Freedom!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마침내 감옥을 탈출하여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환영했던 자유! 내가 감당했던 모든 역할과 임무를 다 내려놓는다 해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의 본질이 바로 ‘자유’ 임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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