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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Aug 23. 2022

나를 숨 쉬게 하는 공간

힘들었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를 견디게 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만의 힐링 타임을 떠올릴 때 ‘커피’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직장에서 5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취향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커피가 있는 카페라는 공간에서 혼자 생각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다음 업무 진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리셋되는 것처럼 충전이 된다. 역으로 한 주간 동안 카페 갈 일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 많았다는 증거다. 너무 자주 방전되어 직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급 충전이 필요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직장 일로 터질  같은 머리를 식히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면, 주인장이 직접 볶은 콩을 갈아 드립 해주는 아이스커피가 있는 카페에 간다. 카페 화단에는 계절마다 어울리는 작고 예쁜 꽃이 피어나고, 카페 안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통창 너머로 ‘  해도 힘이 나곤 했다. 카페 공간은 가정집의 거실처럼 작아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가 귀에 고스란히 들리지만, 사람이 뜸한 시간을  맞춰가면 제대로  커피  잔의 호사를 누릴  있다. 주인장은 직장 퇴사  커피를 배워 카페를 열었다고 한다. 우연히 알게  공통분모는 나와 동갑이라는 , 스트레스로 얻은 고혈압약을 먹고 있는 , 불합리한 조직의 생리가 뭔지를 너무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장이 쿠키를 굽는 시간에 가면  좋게  충전까지   있다. 배가 고플  시켜 먹는 약식 피자  조각에도 건강을 비는 착한 마음이 담겨서인지 맛도 있고 마음마저 배부르다. 작년 가을 개인 사정으로 카페 문을 닫았지만,  마음속서는 언제나 열린 공간으로 남아 있다.       



만약 사람들과 함께라면 공간이 넓고 개방감이 있는 2층 카페에 간다. 2층 베란다 창문이 접이식으로 되어 있어 날씨 좋은 날, 활짝 열고 아래로 내려다보는 뷰가 시원하고, 계절 따라 변하는 풍경의 색도 근사하다. 이곳에서는 단골만 알고, 단골에게만 제공하는 쉐이킹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일품이다. 칵테일을 만들 듯 ‘쉐킷 쉐킷’ 힘 있게 흔들어서 유리잔에 커피를 따르면 흑맥주처럼 두꺼운 거품이 생긴다. 쉐이킹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맛이 부드럽고, 낮 맥주를 마시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해서, 나른한 오후에 기분을 확실하게 ‘업 up’시키는 매력이 있다. 잠깐의 여유지만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 약간의 동지애도 생기고, 답답했던 마음에 바람이 솔솔 통하듯 환기가 되어 좋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점심을 건너뛰고 배가 몹시 고플 때는 혼자서 얼른 돈가스와 커피를 함께 주는 카페에 간다. 점심시간만 피하면 카페엔 손님이 거의 없다. 길쭉한 원목 테이블에 앉아 바싹 튀겨주는 돈가스를 매운 소스에 찍어 먹는다. 내가 ‘야채 킬러’라는 걸 알고 있는 여주인은 신선한 샐러드를 하나 가득 서비스로 내주며 반가움을 대신한다. 그리고 배부르니까 커피는 아이스로 테이크아웃! 여주인은 가끔 내게 대학생 딸 이야기를 한다. 딸이 너무 공부를 안 하고 놀기만 하는데 어떡하면 좋으냐, 휴학한다는데 허락해야 하나 말려야 하나 등등. 엄마의 걱정과 잔소리로는 젊은 딸을 바꿀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데, 내게 어떤 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나는 무조건 딸의 입장에서 말해 준다. 아마 딸이 실컷 놀고 나면 언젠가 공부하고 싶어질 거다, 젊을 때 잘 놀아야 나중에 그 힘으로 스트레스를 감당한다, 딸이 휴학하고 싶은 데는 다 계획이 있어서일 거다 등등... 여주인은 ‘맞아, 맞아’ 하면서 젊었을 때 우리 또한 놀기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우리가 부모 뜻대로 되지 않았듯, 자식도 우리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 괜한 걱정을 했구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여주인의 구수한 부산 사투리를 듣고 있자면 나의 머릿속에 시원한 바다가 펼쳐지고, 어디선가 파도 소리도 들려오고, 이곳이 아닌 먼 곳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다.  

    



그동안 여차하면 들락거리던 특별한 공간이 직장 근처에 있었던 게 참 다행이다, 하루 동안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거나, 허기진 배를 채우며, 잠시 쉼표를 찍었던 것이, 긴긴 직장생활을 요만큼이라도 견디게 해 준 ‘힘’이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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