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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Aug 24. 2022

인생의 허무함이 찾아올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아이는 먹고 싶은 과자가 있어도 돈이 없으니, 어른에게 자기를 위해 과자를 사 줄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맘대로 갈 수 없다. 그곳이 아무리 이웃에 사는 친구 집이라 해도, 말없이 하는 외출은 어른을 걱정시키니까 하면 안 된다. 밤늦게까지 놀고 싶어도 아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깜깜한 방에서 엎치락뒤치락거리는 한이 있어도 억지 잠을 청해야 한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어린 시절의 하루는 시간이 어찌나 더디게 흘러가는지, 아무리 자고 또 일어나도 나이 한 살 먹는 일이 까마득하기만 했다.      




‘어~어!’하면서 봄, 어영부영 여름을 지나, 아침저녁으로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바람이 부는 요즘, 어찌나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지 금세 또 나이 한 살을 먹겠구나 싶다. 과거에 그토록 내 마음을 괴롭히던 문제도 지나고 나니 그게 그렇게 괴로워할 문제였나 싶다. 시간이란 꽁꽁 묶어두었던 마음의 상처를 해제하고, 문제보다 더 크게 나를 성장시킨다. 아무리 노력해도 얻지 못한 것이 있었는가 하면, 생각지도 않은 행운처럼 거저 주어진 것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가도, 그 사람 때문에 괴롭기도 하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 외롭다가도, 온 우주가 나를 응원하고 있는 듯 가슴이 꽉 차오를 때도 있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던 일을 마침내 이루어낸 행복감도 잠시, 어느새 허무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살 만큼 살아본 후 고백하는 삶의 허무가 ‘찐’이다. 허무함이 찾아올 때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덧없다, 공허하다, 부질없다, 허무하다, 외롭다, 무익하다, 쓸쓸하다, 텅 빈 듯하다…. 살아 있는 한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오늘도 내일도 살아내야 한다. 앞일을 열심히 예측하고 준비해보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바람이 불어와 예상치 못한 곳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더욱 ‘현재’만이 내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시간임을 깨닫곤 한다. ‘Here & Now’, 현재에만 집중해야 한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생각의 범위를 최대한 좁혀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최대한 기쁘고 즐거운 나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뜻밖에 찾아온 질병으로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잠자고, 보고, 느끼고, 두 발로 걷고 뛰는 신체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경우가 있다. 그제야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왔던 일상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해왔던 일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한 것이구나 하는 인식의 전환이 온다. 매일 지겹게 반복했던 사소한 일이 실은 자신에게 허락된 선물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삶에 허무함이 찾아올 때 지금까지 거저 받아왔던 복을 헤아려 본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내가 노력해서 일군 보람된 일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와, 내 인생 이만하면 근사하네. 괜찮았네.” 애정 어린 눈으로 나의 삶을 끌어안는다.      




언젠가 지금보다 더 무거운 일상을 살아가야 할 날이 온대도, 여전히 내 인생 후회 없었노라고, 참 잘살았다고, 행복했다고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지금 여기에서 더 자주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삶을 살고 싶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the present.
                                                      
 -영화 <쿵푸 팬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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