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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Jul 27. 2022

이별의 슬픔을 달래기 위하여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마음을 나누던 교회 강아지 ‘달콤이’가 얼마 전 숨을 거두었다. 오랫동안 특별한 망식으로 서로를 길들였던 친구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그냥 눈물 나고 슬픈 일이다. 달콤이 소식을 전하자마자 뚝뚝 눈물을 쏟으며 못내 이별을 아쉬워하는 딸의 모습이 안쓰럽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은 즉흥적이고 갑작스럽게 맞이할 때가 많다. 준비 없는 이별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는 ‘영원히 너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이 도움된다. 함께 했던 추억을 소환하여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온도가 조금은 상승하기 때문이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던 제자의 마지막 근무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생활하며 하루를 잘 마무리했노라고 전화가 왔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의 제자는 교실 환경을 더욱 쾌적하게 바꾸고, 아이들을 제 품에 쏙 들어오게끔 관계를 맺고, 학급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몇몇 아이의 품행을 바로잡는 등 눈부신 교육성과를 보였다. 아이들에게 복된 참 좋은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제자가 떠나도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에 또 쉽게 적응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지만, 정들었던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제자의 마음엔 아쉬움과 슬픔이 묻어 있다.      


다음 학기 수업 운영 준비가 한창인 요즘, 나도 학생들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지난 종강 때의 만남이 우리 수업의 마지막임을 학생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내 나름대로는 이별을 염두에 두고 의미 있는 이별 의식을 치르기 위해 애썼다. 마스크를 쓴 채였지만 학년별 단체 사진을 찍어 공유하고, 서로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덕담을 나누면서도 다음을 기약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때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학생들은 2학기 수강 신청을 하면서 내 수업의 빈자리를 궁금해하면서 나의 명퇴 소식도 접할 것이다.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이내 다른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2학기 나의 수업이 채워지면 서서히 나의 흔적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못내 아쉬운 이별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그동안 함께 했던 학생들을 기억하고, 공유했던 추억을 소환하여 음미하고 싶다. ‘내가 너희를 꼭 기억할게. 너희 모두가 좋은 선생님으로 성장하길 꼭 응원할게.’ 


영화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보았다 Collateral Beauty]에서 주인공은 사랑했던 딸을 떠나보낸 후 긴 방황의 끝에서 딸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누군가와 그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온전히 슬픔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가슴 뒤편에 묻어두지 않고 불러내어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만 슬픔을 달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멀리 있는 듯 보이나 ‘기억’이라는 연결고리로 하나가 된다. 물리적 이별은 단절이 아니라 기억으로 인해 다시 연결된다. 기억을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이별의 슬픔은 삶을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위력이 세지고, 그저 이별의 대상과 그때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슬프지만 담담히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김달님 작가의 책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를 읽다가 앞으로 나는 이렇게 살아가면 되겠구나 하며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던 인용 구절이 있다.      


선택할 수 없었던 인생을 꿈꿀 수는 없다. 하지만 선택할 수 없었던 인생이 내게 미소를 지어 줄 때, 언제든 그 인생에 부끄럽지 않게 존재할 수는 있을 것이다. - 요시모토 바나나, <시모키타자와에 대하여> 중에서 - 


나의 자발적 선택과 의지로 학생들과 이별하게 되었지만, 학교 밖 더 넓은 세상에서 어쩌면 학교 안에 계속 머물렀을지도 모를 나와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나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 참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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