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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Sep 19. 2022

떠난 후에 남는 말들

은퇴하는 사람들은 지난날을 돌아보며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 은퇴와 관련된 연구와 책에서는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건강과 관련해서 자기 건강관리를 등한시한 것, 돈과 생활 부분에서 노후를 위한 재정 설계를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 관계적인 부분에서 자기를 위한 시간이나 취미를 갖지 못한 것,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부족 등을 가장 많이 후회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대화란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것이다. 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듣는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상호작용과 심리적 역동이 일어난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한 말도 듣는 사람에게 부정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그만큼 마음의 대화를 나누기가 힘이 든 모양이다.     


직장을 은퇴하는 사람들이 퇴임식 때 빠트리지 않고 하는 말 가운데는 혹 자신이 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받은 사람이 있었다면 너그러이 용서해달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저의 부주의한 말과 경솔한 행동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부덕을 참회합니다.”라는 식이다. 특히 말을 많이 하는 직업군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실수가 잦았고, 누군가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도 주었고, 말의 열매가 아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 자신도 상처받는다.      


나의 입을 떠난 말은 내 기억에서보다 타자의 기억 속에서 독특한 형태로 작동한다. 오래오래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말이 금방 연기처럼 사라지는가 하면, 안 하느니만 못했단 생각이 들어 “이 말 만은 잊어주오.” 싶은 말은, 누군가에게 평생 기억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는 말을 해서 후회했던 경우가 말을 하지 않아서 후회했던 때보다 훨씬 더 많았는지 모른다.      



데이 셰퍼드는 [세 가지 황금 문]이라는 책에서 말을 하기 전 황금과 같이 소중한 세 개의 문을 통과할 것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정말 필요한 말인가?
 그것은 친절한 말인가?


참말이어도 듣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말일 때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참말이고, 상대에게 필요한 말이어도, 목소리를 높여 말하거나 친절한 태도로 하지 않을 때 상대의 마음 그릇에 담기지 않는다.  교사는 지식을 가르칠 뿐 아니라, 학생들이 지혜와 교훈을 깨달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설득하는 존재다. 교사의 가르침이 참이고 필요한 것이라 해도 학생들의 이해 수준에 맞지 않는 불친절한 방식으로 제공될 때 교육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먼저 교사의 가르침이 학생들 스스로 새겨들을 가치가 있는 말로 들릴 때 교과에 대한 흥미가 생기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일어난다.


며칠 전, 몸담았던 학과의 학생 대표들이 퇴임 축하 패와 꽃, 1학년에서 4학년 친구들의 마음 꾹꾹 눌러쓴 손 편지 책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학생들로부터 받는 마지막 편지였다. 집에 돌아와 한 장 한 장 편지를 읽으며 나의 교직 생활을 추억할 수 있었다. 나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받아주었던 고마운 학생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뭉클했다. 학생들의 편지에 마음으로 답해 본다.      



학생들의 손 편지 책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는 모습을 통해 저도 끊임없이 도전해서 성취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요. 도전이 꼭 성취로 귀결되지 않아도, 도전하는 과정이 분명 의미 있을 거예요.”      


“수업이 끝나면 수업내용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며 항상 즐거웠습니다” 

“맞아요. 수업의 진한 여운 때문에 나도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답니다.”      


“색다른 방식의 수업으로, 발표와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수업의 주인공이 되어주어 고마워요. 소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참 좋았어요.”      


“바른길로 인도해 주시고 항상 저희를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내 인생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었답니다. 고마워요.”     


“전공에 관한 수업을 해주셨지만, 저는 그 이상을 배운 것 같아요.” 

“수많은 이론에는 많은 사람의 경험과 지혜가 숨겨져 있어요. 지식을 자기 삶에 초대하기만 하면 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전번에 상담받으면서 힘이 되고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었어요.”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와 대면할 수 있는 용기 덕분이었을 거예요.”      


“진심이 녹아있는 수업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진심으로 수업을 함께 해 주어 고마워요.”     


“항상 저희를 진심으로 대해 주시고,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해 주셔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듣고 싶었던 긍정의 말을 이제 자신에게 먼저 해 보세요.”     

 

“저의 내면을 좀 더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자기를 알아가는 일은 항상 즐거운 발견이죠. 계속 자기 마음과 친하게 지내길 바라요.”      


“부족한 저를 예뻐해 주셔서 감사해요.” 

“우린 모두 불완전한 존재예요. 자신을 많이 사랑해주세요.”     


“늘 진심으로 학생들을 위해 고민하고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을 받아주어 고마워요. 각자의 삶을 고민하면서 성장하는 우리가 되어요.” 


 “제가 수업과 과제를 잘 못 따라가도 항상 기다려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수업내용과 부담스러운 과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해 주어 고마워요.”      




학생들의 편지에서 공통으로 발견한 한 가지는 그때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알아봐 주었고, 진심으로 ‘함께’ 수업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서로의 진심이 통했기에 선생의 칭찬과 격려, 꾸지람과 잔소리도 학생들은 순한 귀와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우리는 선생과 학생이기 전에 인간이었고, 서로의 가치와 권리를 존중하면서, 선생이 학생의 벗이 되고, 학생이 선생의 스승이 되는 묘한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수없이 나누었던 말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진심’이라는 키워드를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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