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나 Oct 03. 2022

사랑의 언어가 필요할 때

 

가끔 부부 갈등과 해법을 다루고 있는 TV 프로그램을 볼 때 어쩌면 저렇게 부부의 대화가 엇나갈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각자 자기의 말만 하느라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상대의 말에 담긴 의도나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말을 이해하기도 인정하기도 어렵다. 특히 문제해결 중심의 대화를 하는 이성적인 남편과 공감과 이해를 바라는 감성적인 아내가 대화를 나눌 때는 어떤 말을 주고받든 대화가 겉돌고 마음이 서운해진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이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것만 같았던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분명 부부가 함께 있고, 밥을 먹고 대화도 나누는데, 혼자 있는 것처럼 혹은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외로워진다.  

   

서로의 입장과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 너는 아무리 비슷한 사람이라 해도 어떤 지점에 가서는 분명 다르다. 나와 너를 알아가는 작업은 어쩌면 평생 탐구해도 모자랄 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과거의 그때 그 모습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외양뿐 아니라 마음도 변한다. 내가 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모두 고려하고 통합해야만 나의 정체성이 구성된다. 너라는 존재를 알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이해와 발견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래서 한때 알았던 사람이라도  ‘아직 나는 너를 다 알지 못한다’는 관점에서 끊임없이 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자 궁금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흔히 남녀가 처음 만나 사랑을 시작할 때는 나와 다른 상대의 낯선 부분에 매력을 느끼거나, 자기와 비슷한 상처가 있을 때 빨리 친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애가 길어지면 나와 다른 너의 매력 포인트가 관계의 걸림돌이 되고, 나와 비슷했던 경험 영역이 싫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점 가운데 하나, 여자는 감정언어에 능하고 남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여자의 감정언어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남자의 경우, 공감해야 할 때를 놓치기에 십상이다. 감정의 영역은 풍부해서 한 번에 한 가지 감정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화가 나면서도 슬프고, 좋으면서도 불안하고, 섭섭하면서도 위로받고 싶고, 힘들면서도 뿌듯하다. 아주 사소한 의견 충돌이든, 큰 문제에 대한 이견이든, 경청과 공감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대화가 막히는 경우가 잦아지다 보면 관계가 소원해지고 활기를 잃는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집필했던 개리 채프먼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의 부재보다 사랑의 주파수가 맞지 않기 것을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가운데 제1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너의 말은 .... 란 거지.”하고 우선은 인정하는 것이 존중의 첫걸음이다. 이 과정이 빠지게 되면 나의 말을 하기 바빠서 인정하기보다는 반박이나 주장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에 동의가 되는 상황에서도 들은 말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은 유용하다. 내가 너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후속해서 감정언어로 공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정하기는 상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타인의 가치와 힘을 신뢰한다면 실패와 새로운 도전 앞에서, “도대체 네가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어?”, “네가 하는 게 그렇지 뭐.”,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식의 부정적이고 실패를 예언하는 식의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실수와 상처를 딛고, 깊어지고 성장하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인정과 격려가 필요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있지.”, “바라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스럽겠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게 중요해. 한 번 해봐.” 이러한 말로 다시 시작해 보려는 용기 1그램이 더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성공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말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상대가 기뻐할 만한 축하를 해주기 어렵다. 예를 들면 수학을 100점 맞고 온 자녀에게 다음번엔 국어와 사회도 100점 맞도록 공부하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이다. 축하보다는 부담을 안겨주는 말이다. 이때 제대로 된 인정과 축하의 말을 해 본다면, “와! 수학을 100점 맞았구나.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100점을 맞아 왔구나. 축하해.”라고 하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축하뿐 아니라 노력의 과정에 대한 인정을 함께 말해주면 자녀의 입장에서는 고맙고 안심이 된다. 

      



학교 수업에서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이해주는 학생들이 있어 행복했다. 반짝이는 눈으로 나의 말을 들어주는 그들에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은 나도 그들의 말을 온몸으로 듣고, 인정하고, 공감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수업 중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좋았다.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는 그들의 생각과 경험, 감정을 수업내용과 콜라보하면서 이해의 폭과 깊이가 확장되는 것을 경험했다. 모두가 다른 인격체이므로 서로 비교할 수 없고, 독특한 그들만의 모습 그 자체를 알고자 다가가면 대부분 마음을 열어주었다. 학생들에 대한 인정은 고마움으로 표현되곤 했다. “얘들아, 나의 학생이 되어주어 고마워. 오늘도 함께 수업을 신나게 만들어 주어 좋았어.”      


존재의 가치를 인정해주기, 타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경청하기, 내 생각과 감정을 전하되 강요하지 않기, 다양한 감정언어를 익혀 공감하기, 구체적으로 격려하기 등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할 때 언제나 통할 수 있는 진리인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떠난 후에 남는 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