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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Oct 11. 2022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나이 들수록 좋아하는 것이 많아질까? 싫어하는 것이 많아질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의 종류와 양도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걸까? 나이보다는 기질과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걸까? 혹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어떠한가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일까? 문득 나에게 질문을 해 본다.     

 

퇴사하고 나의 삶에서 눈에 띄게 변화한 부분이 있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틈만 날 때마다 ‘아 좋다!’, ‘와, 아름다워!’, ‘참 감사하다!’라며 감탄하는 순간이 늘어난 것이다. 정답을 다 아는 듯한 마침표는 깔끔하지만 차갑게 느껴지곤 했었는데, 요즘은 느낌표와 물음표, 혹은 줄임표를 사용하면서 내 생각에 여지를 남겨두곤 한다. 그 가운데서도 단연 느낌표가 찍히는 순간에는 새삼 울컥하고 감동하는 마음이 차올라 나의 눈가에까지 눈물이 맺히곤 한다.      


나의 마음과 대화를 나누며 진짜 나(self)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은 헛되지 않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틀림없이 내가 맡은 부분에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 한편에 혹 내가 잘하지 못해서 일을 그르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불안이 높아질수록 일에 몰입하게 되고 그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워커홀릭이 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미래는 불안으로 맞이하는 시간이 아니라 소망으로 기다려봐야 하는 시간임을 알았다. 과거의 시간은 기억함으로써 지금의 내가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알 수 있고, 선물같이 주어지는 현재의 시간은 오직 사랑으로 더욱 풍성해진다. 만약 일을 더 잘 해내기 위한 불안보다 현재의 사랑과 노력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다채로운 역동과 불확실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았을 텐데. 만약 나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잘 구분할 수 있었더라면, 중요한 일을 선택하고 집중함으로써 그 밖의 것에는 덜 신경 쓸 수 있었을 텐데.      


‘주여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로 시작하는 Reinhold Niebuhr의 평온을 구하는 기도 가운데 오늘은 다음의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한 번에 하루를 살게 하시고, 
한 번에 한순간을 누리게 하시며, 
세상을 나의 원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과거, 몰아치는 일 속에 매몰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나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듯 갑갑했고, 그 안에서 싫어하는 것의 목록을 늘여갔다. 지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오롯이 현재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순수한 관심을 두게 되자 그와 함께 있는 순간 온몸으로 경청하게 되고, 그의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고 느끼고 감탄하게 된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임에도 처음 느낀 떨림 마냥 그의 사랑스러운 구석에 반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 어느 때보다 ‘관계성’이 강조되고 있는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아가면서 개인적이면서도 관계 지향적인 마음의 생각이 강조된다. 나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고유한 세계를 활짝 열어 더 많은 타자와 활발히 소통하면서 알게 되는 나의 나다움과 너의 너다움이 아름답다. 자연은 신비한 질서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아름다움에 대한 영감을 길어 올리게 하는 의미 있는 ‘너’가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물들어가는 나뭇잎만 바라보아도 ‘아, 예쁘다!’, ‘귀엽다!’, ‘멋지다!’ 하며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되는 요즘이다.  


구름이 들려주는 말에 귀 기울이면


때에 따라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오늘 하루 이 순간만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향해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싶다. 자기 인생을 어루만지며 사랑할 힘이 있다면 그 힘으로 타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경청하고 돌볼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해 경이로움과 존중도 커져서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관계성’을 키워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눈동자에 비친 타자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참 좋다!’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매일의 아침이 ‘좋은 아침’(Good morning)이기를 꿈꿔 본다.       


   

사랑을 표현할수록



바큇살들이 바퀴 축과 테두리에
제대로 끼워져 있기만 하면
다른 살과의 간격도
자연히 바르게 조정되는 것처럼,
우리도 신과 바른 관계를 맺기만 하면
틀림없이 동료 피조물들과도
바른 관계를 맺게 된다.
       - C. S. 루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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