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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Nov 07. 2022

집에 대한 기억과 의미

   

집은 일상을 살아내는 공간이다. 집은 매일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경험을 담는다. 어린 시절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 밖에 나가 상처를 받아도 집에 돌아와 쉬다 보면 치유되는 공간, 아빠의 서재 엄마의 부엌에서 어른의 활동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며 ‘내가 만약 어른이 되면’이라는 생각으로 시작되는 꿈을 꾸는 공간이었다. 집은 엄마가 날마다 생명을 살리는 밥을 짓고, 가족들은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으며 가족 공동체의 끈끈한 정으로 연대하여 ‘식구’가 되어가는 공간이었다.      


어릴 때의 집은 넓지 않은 공간에서 여섯 식구가 복닥거리며 나의 방이 아닌 우리의 방에서, 내 것보다는 우리의 것을 함께 나누며 살아야 하는 환경이었다. 그때는 다른 공간에서의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인지 생활의 불편함이나 부족함에 대한 불평이란 게 없었다. 나에게는 엄마의 손을 도와줄 두 언니가 있고, 막내의 특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틈만 나면 나만의 세계로 숨었다. 내가 좋아하는 구석 자리 어느 곳에 콕 틀어박혀 책을 펼치고 앉아, 현재가 아닌 다른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여행을 하는 것이다. 특히 지구 반대편 북유럽 동화책을 읽을 때면 글에서 묻어나는 거대한 공간감에 마음마저 탁 트이는 시원한 느낌을 받곤 했다.     



김선진(2020). 나의 작은 집. 상수리.


김선진 작가의 그림책 [나의 작은 집]은 그동안 내가 살아온 집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작고 소박한 집에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꿈을 꾸며 살다가 떠난다. 집은 카센터에서 사진관으로, 사진관에서 혼자인 할머니와 길고양이들의 사랑방으로, 할머니의 집에서 모자 가게로, 모자 가게에서 아무도 살지 않은 집으로, 아무도 살지 않은 집에서 작은 찻집이 된다. 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가에 따라 집의 외양과 내부 공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각자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집이라는 공간을 꾸미고 채워가며,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내고 꿈의 씨앗을 뿌린다.     


 

집의 변천사(김선진, 나의 작은 집)


문득 몇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의 집에 살기까지, 내가 살던 집에서는 어떤 사람이 살았는지, 그 사람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은 그 집에 사는 사람에 의해 독특하고 인격적이면서 심리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변모한다. 공간은 집에 사는 사람의 가족사진, 그가 좋아하는 수집품이나 책, 식물과 차 등 그의 취향을 나타내는 모든 것에 의해 숨을 쉰다. 결국 집은 공간과 사람의 관계, 그곳에서 삶을 공유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 아닐까.     

 

굳이 옛집을 허물지 않고 보존 가능한 영역을 살려 개조한 집을 볼 때면, 집의 역사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의 추억이 숨 쉬는 집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 쌓여가는 집의 이야기가 있는 한, 집의 생명력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그릇이나 가구, 엄마에게 물려받은 재봉틀이나 옷, 장신구 등은 단순히 물건을 건네받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삶의 흔적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연결되어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만약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거기에 꼭 가져가고 싶은 물건은 무엇인가?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다음번 나의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뜰에 나무가 있는 주택이어야 해. 독립된 공간이 세 개로 나뉘어 있어서 생활하는 공간, 작업하는 공간, 출가한 아이들이 집에 와서 편안히 쉴 수 있는 손님을 위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 나의 새집에는 최대한 물건은 조금, 공간은 넓게, 집안의 조명도 가급적 간접적으로 은은하게 해야지. 


내가 살고 싶은 집


현실로 돌아온 나는 현재의 집을 나의 바람대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발견한다. 그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많은 짐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을 남기고, 나머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들을 과감하게 비우고 나누자. 새로 생긴 빈자리에는 집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연결 고리 안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이야기와 추억, 자연의 빛과 바람을 가득 담아보자.



즐거움을 담자!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 <즐거운 나의 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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