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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Feb 10. 2023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요즘 뜨는 TV 프로그램 가운데 일반인 종합격투기 진검승부를 가르는 SBS <순정 파이터>에 마음을 빼앗겼다. 종합격투기란 어떤 운동이나 무술을 익혔든 상관없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일대일로 겨루어 이기는 경기다. 맨몸 진검승부! 경기하기 전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딱 두 가지다. 정직하게 땀을 흘려 몸을 단련하고 몸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을 더 많이 연습하기와 끝까지 자신을 믿어줌으로써 흔들리는 멘탈을 붙잡는 것이다.      


<순정 파이터>에 출연하는 일반인은 대개 격투기에 진심이고, 그동안 해왔던 운동 구력도 상당하다. 파이터를 꿈꾸며 전국 각처에서 모인 사나이들은 고된 훈련을 받고, 몸을 써서 배운 하나의 기술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위하여 수없이 반복 연습했다. 그래야만 자기 몸이 기억하고 있는 기술을 실전에서 이루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는 경기를 치르기 위해 케이지에 들어가서 자신과 겨룰 선수와 마주설 때 긴장되고 두려운 순간을 맞이한다.  잠깐이지만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중도에 KO패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자기 체력이 급 저하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갑자기 스쳐 지나갈 것이다.  <순정 파이터>의 경우 싸워 이겨야 할 상대가 방금까지도 전우애를 다지던 친한 형이고 귀여운 동생이기 때문에 마음이 더 힘들 수 있다.


내 눈을 잡아끈 선수가 있다.  ‘샌드백’이었다. 그는 사전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시절 또래 괴롭힘을 2년 정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한동안 우울한 학교생활을 했다고 고백했다. 마냥 해맑게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유소년 시절을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으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본인이 작고 소심해서 친구들이 괴롭혔다고 말했지만, 실상 이 말에는 오류가 있다. 이 세상에 작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맞아도 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단지 질 나쁜 친구들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행동을 어린 ‘샌드백’에게 가했고, 일방적으로 당했을 뿐이다. 괴롭힘의 이유 같은 건 없다. '샌드백'에게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는 TV에서 본 UFC 선수들이 작은 팔각 케이지 안에서 서로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모습을 보았고, 그 모습에 반해 운동을 시작해서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강해지는 것만이 자신의 약함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약이었고, 그 약은 바로 운동이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승부를 내는 모든 스포츠는 상대방을 이겨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떨쳐내야만 하기에 외롭고 힘든 자기와의 싸움이다. 경기에 임하기 전 선수들의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샌드백’도 그랬다. 8강 진출권을 따기 위한 ‘샌드백‘의 마지막 경기였다. 케이지에 오른 그의 동공은 흔들렸지만 이내 승리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멘탈을 붙잡기 위해 자기 확언을 되뇌었다.


이길 수 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아낌없이 임하자!
     

‘샌드백‘에게 다정하고도 힘 있는 격려와 지지를 계속 건네는 멘토, ‘김동현’을 보았다.



어떻게 지원했는지 생각해.
없잖아, 다음은. 마지막이야.
아쉬울 게 뭐가 있어. 후회 안 남게 해야지.
이거 지면 8강 못 올라가.
지원한 거 생각하고,
어렵게 여기까지 온 거 생각하고,
후회 없이 해야지. 다 쏟아붓는다고 생각해.
지원한 거 생각해. 집에 갈 수 없잖아. 그지?
집에 가면 안 되지. 다 왔는데.
 할 수 있어. 체력 좋잖아.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렇지. 괜찮아. 괜찮아. 지금이다.
그렇지!!!!!
(뒤로 물러서지 말고 앞으로) 들어가야 해.
샌드백, 물러서면 집에 가는 거야.
집에 갈 수 없어.
여기 온 이유만 생각해.    

 


'샌드백'은 마지막 경기 1초까지 뜨겁게 최선을 다했고마침내 승리했다. 그는 1라운드를 끝내고 쉬는 시간, 김동현 멘토의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고백했다.   


가슴이 뜨거웠어요.


나는 누군가의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응원한 적이 있었는가? 나는 누군가로 인해 가슴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는가? 안타깝게도 누군가를 응원하고, 누군가의 응원을 받았을 테지만, 그토록 가슴이 뜨거웠던 기억을 찾아내지 못했다.      


<순정 파이터>의 ‘샌드백‘과 그의 멘토 ‘김동현’을 보면서 내가 꿈꾸는 삶의 한 조각을 찾았다.      


- 나는 왜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외면하려 하지? 물러서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 새롭게 도전하는 일을 할 때 나를 믿고,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가자.

-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굴 지지와 격려의 말을 내가 해주자.  

- 누군가의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응원할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꼭! 해주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해.”
“아쉽지 않게, 후회 남지 않게 쏟아붓자.”
“물러서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종합격투기는 단순한 운동 경기가 아니었다. 간절한 꿈을 이루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던져 최선을 다하는 사나이들의 빛나는 삶의 이야기였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력이란 두려움을 느껴도 물러서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에이미 모린(Amy Mo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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