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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May 25. 2023

생각나면 생각 난대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지 2주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이전의 규칙적인 리듬으로 유지되던 일상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리 노력해 봐도 몸과 마음이 축축 늘어지고 뭔가를 하려 하면 집중이 잘 안 되고 무기력해져서 이런 제 모습이 참 낯설기만 했죠. ‘환기’가 필요하다며 밖으로 나가면 세상은 짙은 초록색으로 변해 있고, 숲의 나무는 거대해져서 생명력의 극치를 보여주네요. 잠깐이지만 머리가 맑아지고 숨이 쉬어졌어요.

           

“내가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소중한 아버지를 보낸 상실감이 얼마나 큰 건데….

충분한 애도의 과정이 필요한 거야.”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머리로는 다 이해하고 수용하는 듯해도 마음은 복잡하고 감정은 혼란스러운 게 당연한 거라며 스스로를 토닥여 봅니다.


저보다 앞서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한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았어요. 한 친구는 어머니 돌아가시고 마음 정리하는 데 3년 정도 걸렸다고 하고, 다른 한 친구는 어머니 보낸 지 7주기가 되어도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하고, 어머니가 생각나면 또 울컥하며 눈물을 쏟는다고 해요.


저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상실 수업]이라는 책을 펼쳤어요. 주 저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죽음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학자인데요. 정작 그녀는 죽음을 연구하는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목적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다고 말한 바 있지요.       


우리는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 상실의 고통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채 그것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부딪치게 될 고통이라는 걸 모른다. 슬픔을 회피하며 우리는 슬픔이 건네는 도움의 손길에 등을 돌리고 고통을 연장시킨다. 왜 애도해야 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잘 애도하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다. 두 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슬픔은 마음과 영혼 그리고 정신의 치유 과정이다. 그것이 완전함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이다. 애도할지 말아야 할지가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언제’ 애도할 것이냐이다. 충분히 애도하기 전까지는, 그 마무리되지 않은 일의 여파로 인해 고통당한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상실수업> -      


문득 아버지와 함께했던 마지막 날 아침이 생각나요. 그날은 언젠가 어머니 혼자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버거울 때를 대비하여 ‘요양 등급 심사’를 받기 위해 건강보험공단 심사관이 집을 방문했어요. 심사의 과정은 일차적으로 아버지의 상태가 어떠한지 보호자에게 묻고, 그 말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본인을 인터뷰하는 순서로 진행되었죠.    

  

“할아버님, 왼팔을 위로 올리실 수 있으세요? 왼팔을 한 번 위로 들어보세요.”


아버지는 온 힘을 다해 왼팔을 들어 올리셨어요. 얼마나 손에 힘을 꽉 쥐었던지 그 순간 아버지의 손목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서고 팔은 부들부들 떨렸지만 말이에요.      


“할아버님, 오른쪽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릴 수 있으세요?”


심사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번에도 아버지는 덮고 있던 이불부터 걷고서 온 힘을 다해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셨어요. 이쯤이야 식은 죽 먹기라는 듯 아버지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어요.     

 

그 밖에 아버지의 인지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기억력과 암산 능력을 요구하는 질문에는 젊은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정답을 맞히셨어요. 지금이 몇 월이냐는 질문에 아버지는 영어로 “에이프럴(April))”이라고 답하셨죠.  평소 아버지의 위트 있는 표정이 잠깐 되살아나, 오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웃음 짓게 했어요. 심사관이 돌아가자 아버지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나 잘했지?” 하시고는 금세 피곤해지셨던지 좀 쉬어야겠다 하셨죠.


아버지는 언제부터인가 저와 헤어질 때 “안녕”이라는 말보다 “고마워”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날도 제 손을 꼭 잡고 활짝 웃으시며 “고마워” 하셨어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마치 중요한 시험을 마친 젊은이의 활기 넘치는 듯한 얼굴이어서 다행이에요.     


존 버닝햄의 그림책 [우리 할아버지]에는 손녀와 재미있게 놀아 주던 할아버지의 죽음을 덩그러니 남겨진 초록색 소파로 나타내고 있어요. 손녀는 할아버지의 초록색 소파를 바라보고 있어요. 손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할아버지와 함께 식물을 가꾸고, 바닷가에 놀러 가고, 소꿉놀이하던 추억, 거동이 불편해서 소파에 앉아만 계실 때도 자기와 놀아 주던 깨알 같은 시간을 회고하고 있는 걸까요?


존 버닝햄, <우리 할아버지>


저도 삶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쉽게 지우지 못할 것 같아요. 아니 평생 아버지를 보낸 상실의 슬픔을 안고 살아갈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슬픔은 가라앉고 일상을 회복하겠지만, 저의 삶에서 아버지가 생각나면 생각난 대로 충분히 아버지와의 추억을 음미하며 애도함으로써  저의 마음과 영혼, 정신을 온전히 치유할 수 있길 바라요.


슬픔은 마음과 영혼 그리고 정신의 치유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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