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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Jun 09. 2023

내 안의 예술가를 불러내는 시간

언제부터인가 책을 살 때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게 되는데요. 잠깐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니 다른 날 각각 주문했던 책 두 권이 배송되어 나란히 집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두 개의 택배상자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요. 우연찮게 두 책에서 공통점을 발견해 내고서 혼자 ‘푸훗’ 웃음이 터졌어요.


그림


책 제목과 내용도 전혀 다르지만, 제목에 모두 ‘그림’이라는 글자가 있었어요.

책 제목에 있는 '그림'이라는 글자

‘그림’이 좋아 ‘그림책’에 빠지고,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이 보고 싶어서 ‘전시회’를 찾아다니곤 했던 제가 무작정 마음이 이끄는 대로 도전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림 그리기’인데요. '이제부터 그림을 그릴 거야' 마음먹었을 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능력이나 가능성 따위에 의문을 품지 않고 그냥 1일 1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유아에게 종이와 그림도구를 주면 신나게 자신 있게 거침없이 그림을 그리듯이  저도  그냥 그림을 그렸어요. '나는 지금 그림일기를 쓰는 거야' 라며 자기 최면을 걸고, 그림과 함께 짤막한 글도 남겼죠.  ‘내가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퇴사하자마자 지난해 9월부터니까....’하며 손가락으로 시간을 헤아려보니  놀랍게도 10개월째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흘러간 시간이 빠르게 느껴져 한번 놀라고, 그동안 꾸준히 그림 그리기를 해 왔다는 데 또 한 번 놀랐어요. 뿌듯한 마음에  책장에 꽂혀 있던  손바닥 크기만 한 그림 앨범 세 권을 뽑아서  바닥에 놓고 촤르륵 펼쳐 봅니다.


그림 앨범을 펼치고

그림으로 그리거나 기록하지 않았다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하루하루의 이야기가 선과 면, 형태와 색으로 꾹꾹 담겨 있어요.


 아~! 그날 내 마음이 이랬구나. 그래 맞아. 이런 일도 있었지. 여기는 어디였지. 이거 참 맛있었지!

그림을 보면서 지난 시간의 하루 동안 저의 눈과 마음이 머물렀던  풍경, 사람, 사물, 감정을 소환하며 시간여행을 합니다. 행동의 주체인 ‘나의' 경험을 관찰자인 또 다른 ‘내가’ 보면서 느끼고,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나'를 새롭게 알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마음이 어김없이 기울어지는 자리는 여기, 내 마음이 흘러가는 방향은 이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 등 그림에는 마음이 담겨 있고, 그림을 보니 마음을 알 수 있었죠. 그림을 보면서 마음까지 알 수 있다는 건 참 신비로운 일인 것 같아요.     


내 안의 예술가를 불러내는 그림 그리는 시간 동안 내 마음이 치유받았구나

찔레꽃을 그렸어요.

아버지께 첫 성묘 가는 길에 활짝 피어있던 하얀 꽃이 눈길을 사로잡은 날의 그림은 '찔레꽃'이에요.  무성한 초록 잎 사이사이에 작고 귀여운 하얀 꽃들이 콕콕 박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꽃의 모양도 향기도 너무 근사해서 “울 아버지, 찔레꽃에 취향저격 당하시겠네” 하며 가라앉는 마음을 띄워보기도 했죠. 아버지 곁에 아름다운 찔레꽃이 함께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던 그날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보니 괜스레 더욱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찔레꽃이 지고 가을이 오면 붉은색 찔레 열매가 조롱조롱 열리고, 새들이 날아와 만찬을 즐긴다고도 하니 ‘울 아버지 심심하지 않겠다’ 하면서 또 기분이 좋아졌어요.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라울 뒤피를 일컬어  ‘기쁨의 화가’라고 한다죠. 그의 작품 안에는 삶이 주는 기쁨과 행복이 담겨 있다고 해요. 아버지의 부재와 상실감으로 가라앉은 몸과 마음에 기운이 조금 회복되는 어느 날, 저는 라울 뒤피의 전시회에 가보려고 해요. 그의 작품을 대하면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 속에서 느꼈던 소소한 기쁨과 행복, 사랑과 고마움을 떠올리며 분명  나의 삶에 다시 미소 짓게 될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죠.


라울 뒤피를 그리다

 

삶은 나에게 항상 미소 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항상 삶에 미소 지었다.
-라울 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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