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이자를 많이 주면 좋겠다. 우리네 부모님만 해도 예금만 들어서 연 10%가 넘는 이자를 받아 돈을 모으고 집을 샀었다는데, 이제 10%라는 이자율은 곰이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재테크 걱정 없이 살 수 있던 고금리 시대,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누가 이렇게 금리를 낮춰놓았나.
금리란 무엇인가
우리가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은행은 정해진 금리에 맞춰 때마다 이자를 준다. 반대로 우리가 은행에 돈을 빌리면 역시 정해진 금리에 따라 매월 은행에 이자를 내야 한다. 그림으로 표현해보면 이렇게 되겠다.
예금, 대출을 할 때 돈의 움직임 이번에는 우리가 자주 거래하는 당근마켓을 떠올려보자. 은행은 거래의 상대방으로, 이자는 거래하는 물건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이름만 바뀔 뿐, 모양은 똑같다.
혹시, 당근? 당근마켓에서 돈과 물건을 주고받는 것과 은행에서 예금을 가입하고 이자를 받는 게 다르지 않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듯, 예금을 맡기고 이자를 받는다. 즉, 이자는 돈의 대가다.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는 가격이 정해져 있다. 은행에 돈을 주거나 빌릴 때는 금리에 따라 이자를 주고받는다. 마치 물건에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그렇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다.
금리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경제학개론에서는 시장 가격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통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판매자는 시장에 파는 제품의 가격이 비쌀수록 많이 팔아 더욱 많은 이윤을 많이 얻고자 한다. 따라서 가격이 비싼 물건일수록 많이 만들려고 한다. 소비자는 그 반대로 움직인다.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물건이 있다면, 조금 더 가격이 낮은 걸 많이 사게 된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욕구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바로 균형 가격이다. 이걸 그래프로 나타낸 게 수요-공급 곡선이다.
두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이제 돈을 하나의 재화라고 생각해보자. 이 재화를 가장 많이 취급하는 '은행'이라는 가게에는 돈을 은행에 팔려는(예금을 맡기려는) 사람도 찾아오고, 사려는(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도 온다. 그래서 은행은 사람들이 파는 돈을 싸게 사서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팔아서 돈을 번다. 너무 싸게 사거나 비싸게 팔려면 하면 사람들이 다른 은행으로 갈지도 모른다. 결국 은행이 파는 돈의 가격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은행은 직접 돈을 만들지 못한다. 옷가게에 재고가 떨어지면 다른 가게의 재고를 빌려오거나 공장에서 옷을 사 와야 하듯, 은행도 더 이상 팔 수 있는 돈이 없을 때는 다른 곳에서 돈을 구해와야 한다. 그게 다른 은행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은행도 돈이 없다면 결국 돈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가야 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 바로 중앙은행이다.
옷을 만드는 공장이 가게로 옷을 보내면, 옷가게는 공장에 옷을 사 오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옷가게는 공장에서 옷을 사 온 데 지불한 금액까지 얹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옷을 팔 것이다. 그렇다면 옷의 가격이 결정되는 기준 가격은 옷을 만든 공장이 정한다 할 수 있다.
돈도 똑같다. 은행이 돈을 사 올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공급처, 중앙은행이 돈의 가치를 정한다. 옷가게는 여러 공장 중 가장 싸게 파는 공장을 고를 수 있지만, 중앙은행은 나라에 하나뿐이다. 즉, 중앙은행은 돈을 독점으로 공급함으로써 돈의 가격을 통제한다.
금리는 내가 정한다, 중앙은행
오직 중앙은행만이 그 나라의 화폐를 만들 수 있다. 믿기 어렵다면 지갑에서 아무 지폐나 꺼내서 살펴보자.
가장 위에 '한국은행'이라고 적혀있고, 아래에 한국은행 총재의 직인이 찍혀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지폐는 한국은행이 발행하고 그 가치를 보증하는 증서다. 10원짜리 동전부터 5만 원 지폐까지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모든 화폐 중에 다른 은행의 이름이 들어간 화폐는 없다.
화폐의 독점적 공급자로서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막강한 권한 중 대표적인 게 바로 기준금리 결정권이다. 나라 안에서 유통되는 돈의 기준가치를 중앙은행이 결정한다는 뜻이다. 중앙은행은 정책 목표를 지키기 위해 경제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기준금리를 결정하는데, 이를 통화정책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미국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바꾸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은행이 중앙은행에서 사가는 돈의 가격이 변한다. 그렇다면 은행은 그에 맞춰서 예금, 대출 금리를 바꿀 것이다. 예금금리가 바뀌면 은행 바깥에서 돌던 돈이 은행으로 향하거나, 은행 금고에 넣어둔 돈을 도로 찾아가게 될 것이다. 대출금리가 올라가면 빌렸던 돈을 서둘러 갚게 될 것이고, 내려가면 오히려 돈을 더 빌리려 할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은 이를 위해 다른 곳에 투자했던 돈을 회수하거나, 묵혀둔 사업계획서를 꺼내 사업을 시작하려 할 것이다.
이처럼 기준금리의 변화는 경제 전반에 걸쳐 큰 파급효과를 낳는다. 중앙은행은 경기가 둔화될 기미를 보이면 기준금리를 내려서 시중에 돈이 더욱 풀리게 만들고, 과열되는 조짐이 보일 때 기준금리를 올려서 시중에 풀었던 돈을 회수한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모든 경제주체들의 소비와 투자가 멈춰버렸다. 돈이 돌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충격으로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작년 초 주식시장의 급격한 하락을 본 투자자라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이때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나서서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하했다. 돈의 가격을 내려서 경제주체들이 돈을 쉽게 쓸 수 있도록 했다. 그 덕에 코로나가 채 진정되지 않았음에도 금융시장이 회복했고, 실물경제가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다. 작년 3월말 이후 주식시장이 급등한 이유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것도, 기업실적이 좋아진 것도 아니라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게 시장참여자들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할지도 모른다며 주식시장이 급락했던 것도 금리가 올라가면 대출받아 주식샀던 투자자들이 대출을 갚기 위해 일제히 주식을 매도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리 때문이었다. 금리가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크다.
어찌되었든 금융시장은 안정되었지만 그 덕에 안그래도 낮던 예금금리는 이제 바닥을 기고 있다. 이렇게 금리가 낮아지다가는 조만간 은행에서 예금에 이자를 주는 대신 돈을 맡아주고 있으니 보관료를 내라고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아직 코로나 19가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개발한 백신은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확진자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막대한 양의 자금을 풀어낸 미국은 그 힘으로 경기회복 국면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중앙은행은 당분간 기준금리를 끌어올릴 계획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낮고, 경기는 정체되어 있다. 이 길고 긴 터널이 끝날 기미가 보여야 비로소 중앙은행들도 기준금리의 방향을 바꿀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