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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Aug 17. 2021

솔직함에도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슬기로운 면접을 위한 팁

“자기소개서는 반드시 솔직하게 쓰셔야 합니다.”


취업과 관련된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쓸 때면 언제나 강조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취업을 준비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며, 비록 이로 인해 취업 과정이 쉽지 않을지라도 지원자가 자신에게 맞는 회사를 찾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환경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조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늘 마음 한편에 불안한 느낌이 스며들곤 한다. ‘솔직함’에 대해 지원자가 혹여나 오해하거나 확대해석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다.


솔직함에도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몇 해 전, 스타트업에서 채용을 진행하던 때의 일이다. 창의성과 독창성이 중요한 디자이너 포지션이었기에 자기소개서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형식으로 기재할 것을 요구했더랬다. 약 일주일에 걸쳐 지원서를 접수하면서 지원자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살펴보던 중, 한 지원자의 자기소개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기소개서에서의 내용은 간결한 반면 첨부하여 제출하는 포트폴리오는 굉장히 공을 들이는 편이다. 하지만 이 지원자는 포트폴리오 없이 상당한 분량의 자기소개서만을 제출했다. 텍스트의 길이가 다른 지원자들의 3배가량은 족히 되어 보였기에 처음에는 ‘신입이라 아직 자신의 결과물에 자신은 없지만 의욕과 열정이 넘쳐 자기소개서에 이런 특성을 어필한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그렇기에 나의 일천한 경험과 그릇으로 함부로 사람에 대해 예측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이 지원자는 근속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많은 회사들을 짧게라도 경험해보았고, 그동안 다녔던 회사로부터 꽤나 많은 상처를 받은듯했다. 이제는 오래 다닐만한 회사에 취직을 하고 싶다며,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지켜주고 주의해야 할 아홉 가지 사항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 아홉 가지 조건을 지킬 자신이 있다면 자신을 면접에 불러주고, 그게 아니라면 괜히 면접에 불러 상호 시간 낭비하거나 감정 소모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지원자는 자소서를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정확한 워딩까지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핵심이 되는 어휘와 뉘앙스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워낙에 인상 깊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셨으리라 봅니다. 이걸 다 읽고도 거슬리는 게 없다면 함께 일할 수 있는 회사일 겁니다. 그럼 저와 노예 계약하셔도 됩니다. 축하합니다. 좋은 인연이 되길 바랍니다.”


여운이 많이 남는 자기소개서였다. 자극적인 어휘들(개소리, 갑질, 똥개 훈련, 답정너, 부품, 노예계약 등) 때문도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이 자기소개서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만약 담당자의 눈길을 끄는 것이 지원자의 목적이었다면 300% 성공적인 자기소개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몇 년이 지나서도 아직까지 또렷하게 그 지원자가 이렇게 기억에 남아있겠지. 


나는 이 지원자를 면접에 부르지 않았다. 이 지원자가 원하는 조건을 대부분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그리고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호기심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꿈틀꿈틀 용솟음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지원자를 면접에 부를 자신이 없었다. 


원활한 소통은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
결코 한쪽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 그리고 상사에게 불만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부하직원이나 동료의 환경과 견해를 무시하고 탑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지시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불신도 함께 쌓이고, 결국 서로 입을 닫고 기계적으로 지시, 수행을 반복하게 되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경우를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다 어느 정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이런 소통의 실패를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가지 해법이 있겠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서로가 상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에 따른 변화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지원자의 자기소개서에서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벽을 느꼈다. 자극적인 어휘들로 가득한 지원자의 견고한 껍질에 나있는 수많은 가시들을 감내하며 팀을 운영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포트폴리오가 없었던 것도 꽤 큰 부분을 차지했다.)


궁금해진다. 이 지원자는 과연 몸담았던 회사에서 어떤 경험을 했던 것일까. 어떤 경험을 했기에 지원하는 회사들에 이토록 날 선 경고를 먼저 날려야만 하는 것일까. 만약 이 지원자가 조금만 더 사회적으로 원만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표현들로 자신의 입사 조건을 설명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에 합당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할 포트폴리오를 함께 냈더라면, 나는 그래도 이 지원자에게 면접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같은 알맹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긴다. 


무조건 솔직하기만 한 것이 정답은 아니다. 같은 기능과 성능을 가진 노트북도 그 디자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듯, 사람의 표현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것을 요구하더라도 그 표현에 따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 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원자가 가진 원석에 어떤 옷을 입혀 보일지는 오롯이 당신의 역량이며 당신의 몫이다. 솔직하되, 과거의 상처나 혹시 모를 우려로 인해 미래에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기회마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지원자는 다음 회사를 무사히 고를 수 있었을까? 새로운 회사에서는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과는 다른 긍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진심으로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다음에 이직을 할 때는, 좀 더 긍정적인 어휘들로 자신을 표현하는 밝은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그래서 그 지원자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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