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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Aug 28. 2022

독신주의자였던 내가 아빠가 된다

Prologue : 나는 정말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짜잔.”


아내가 눈앞에 기다란 막대기 하나를 내민다. 그곳엔 선명한 두 줄이 새겨져 있다. 결혼 8년 차, 올 것이 왔다. 4년 동안 쉬지 않고 먹었던 엽산도, 3년 전에 끊은 술과 담배도, 주 3일 이상 꾸준히 하던 운동도, 10킬로그램 이상 뺀 살도, 모두 이 순간을 위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은 뭘까. 


사실 나는 독신주의자였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지만, 사실 나는 독신주의자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제멋대로에 누군가의 참견이나 구속을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천상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꽃씨 같은 성격의 나는 누군가와 삶을 함께 하며 안정적인 남편으로 기능하지 못할 것 같았다. 보통 결혼 상대에게 기대하는 책임감이나 참을성 같은 것이 결여된 사람. 호기심에 따라 프리랜서 사진작가, 카메라 리뷰어, 방송국 조연출에서 영어학원 선생님, 연구실 연구원, 체육관 부 사범에서 기업 인사담당자로 직업이 바뀌는 내게 결혼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감히 나 같은 것이 주변에 어물쩡거리다 신성한 그 이름에 먹칠이라도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언감생심 쳐다도 보지 못했던 단어. 결혼은 내게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괜찮아.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오빠는 하고 싶은걸 하게 해 줄게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 친구였을 당시의 아내가 말했다. 우리는 가까운 선후배 사이로 지낸 지 2년 남짓한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실패한 연애를 한 차례씩 곁에서 지켜보았던 우리는 서로를 위로해주며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깨달았다. 그렇구나. 이 사람이 내 연애의 마지막 종착역이구나. 내 나이 스물아홉, 아내의 나이 스물한 살이던 때에, 우리는 사뭇 진지하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혼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평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에 대해서. 


하지만 여전히 나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와 평생을 약속해도 될 만큼 성숙한 사람일까. 내가 혹시 책임지지 못할 성급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이 사람이 나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고 고통받는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인생의 반려를 만났다는 기쁨에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가 달라붙었다. 과연 이 사람은, 나와 함께 일생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 내게 아내가 말했다. 괜찮다고.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고. 


“괜찮아요. 돈은 내가 벌 거야. 나는 그냥 매달 월급이 찍히는 게 좋아요.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거야. 나는 일을 그만 둘 생각이 없고, 웬만한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할 자신이 있어요.”


숨을 고르고, 아내가 말을 잇는다. 


“어려서부터 쭉 일을 했어요.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렵다 보니 첫째인 내가 어떻게든 엄마 아빠를 도와야 했거든요. 나이차가 많이 나는 동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초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나는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그보다는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그걸 달성해나가는 것이 익숙해요. 그렇게 뭔가를 해냈을 때 느끼는 충족감을 먹고살아요. 그래서….”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해요. 내가 당신이 하고 싶은걸 하게 해 줄게. 그녀가 말한다.


“나는 당신이 늘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좋아요. 꿈을 꾸면서 눈이 반짝거리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그러니까 하고 싶은걸 해요.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걸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그래도 넷은 있어야죠


너무도 감동적인 연설이었지만, 20대를 지나며 나름 세상의 쓴 맛을 겪어보았던 나는 호기로운 아내의 말을 모두 믿을 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진심은 분명했고, 나약하기만 했던 나의 마음에 큰 용기가 되어주었다. 그로부터 4년의 연애 뒤, 내 나이 서른셋, 아내 나이 스물다섯에, 독신주의자였던 나는 현실주의자인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감히 말하건대, 정말 부지런히 살았다. 우리는 나름 벌이가 나쁘지 않은 회사에 들어갔고, 안정적으로 결혼생활을 이어나갔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시작한 결혼이어서 많이 부족했지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재미가 있는 생활이었다. 얼굴 구기는 일 한 번 없이 우리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그래도 넷은 있어야죠.”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가 아내가 말했다. 아내가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넷이라니. 하나도 낳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내게는 너무 엄청난 무게였다. 결혼도 무서워서 벌벌 떨던 개복치 같은 내게 아이라니. 그것도 넷이라니. 


아이를 갖는 것은 결혼을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결혼은 현실이라지만, 아이를 갖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결혼을 하고 얼마 뒤, 나는 안정적이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느 창업 팀에 합류해 공동창업자가 되었다. 수입은 들쭉날쭉했고, 반년 가까이 집에 돈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이 오면 아내와 나는 좀 덜 쓰고 참을 수 있겠지만 아이는 그렇지 못하다. 거의 아내의 수입에 의존해서 버티다시피 하고 있는데, 아이가 생기면 그때는 정말 손가락을 빨며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될 것 같았다. 정말 우리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형편인지, 책임감 있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내게 아내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절충해서 둘로 가자.” 


아내의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이건 내가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내 아내는 반드시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내게 아무것도 바란 적 없던 이 사람이  원하는 단 한 가지를,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빼앗을 수는 없다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우리는 차근차근 아이를 가질 준비를 했다. 나는 20년 가까이 피던 담배를 끊고 엽산을 먹으며 독한 다이어트를 이어나가 10킬로그램가량 감량을 했고, 아내는 군대식 문화로 유명한 회사에서 어떻게든 회식자리의 술을 피했다. 야근이 일상이 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꾸준히 운동을 했고 임신과 출산에 필요한 몸을 만들어 나갔다.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래도 준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언제고 때가 되었을 때,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정말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창업팀에 합류한 지 4년이 지나, 나는 호기롭던 도전을 접어야 했다. 대표와 다른 동료들이 가는 길이 내게는 맞지 않았다. 신뢰와 희망을 잃어버린 팀에 계속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고 4년 동안 삶을 갈아 넣었던 회사를 떠났다. 우울감의 늪에서 인생의 바닥을 찍었던 이때의 시간은 또 다른 이야기다.


약간의 공백 기간을 거쳐, 다행히 새로운 회사에서 자리를 잡았다. 첫 월급이 들어오던 날,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이제 더 늦추지 않겠다고. 아내는 진심으로 기뻐했고, 그렇게 우리는 부모가 될 시도를 시작했고, 결국 눈앞에 두 줄이 찍힌 임테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그림자 속에는 올빼미 한 마리가 숨어 이렇게 말한다. 정말 너는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은, 정말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고. 


이 글은 철없는 한 남자가, 남편이 되어,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2022년 8월 28일. 아내는 내일 임신 11주 차가 된다. 과연 나는, 정말 아빠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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