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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Nov 14. 2024

겨울로 가는 문턱

2024년 11월 13일의 기록

문을 열자 입김이 새어 나왔다. 서늘한 손길로 내가 남기고 간 것들을 어루만져주는, 겨울로 가는 문턱의 공기가 퍽 상냥하다. 먹다 남은 어지러이 놓인 반찬도, 주머니에 넣은 채 잊혔던 초콜릿도 시간의 핀으로 박제된 듯 그대로다. 무심하게 흘려보낸 어제도, 좀처럼 떨쳐내지 못했던 내일에 대한 두려움도 기분 좋은 한기로 쓰다듬어줄 것만 같다.


손님이 왔다.
그 손님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많은 일이 있었다. 여름이 끝나자 미국에서 오래 기다리던 손님이 왔다. 그 손님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아내와 아이도 함께였다. 삼 주보다 길고, 사 주보다는 짧은, 무엇 하나 딱 떨어지지 않는 그런 여행이었다. 좋은 것을 많이 먹었고, 분에 넘치는 곳에서 잠을 청했다. 여행을 마친 아이는 부쩍 커있었고, 나는 아이가 지난 반년 동안 자란 것보다 더 많은 살이 붙었다. 




낙엽이 질 무렵 손님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빈자리를 다시 채우는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왔을 때 그러했듯, 그는 모래사장을 스치고 지나간 파도처럼 흔적마저 깨끗하게 치우며 머물던 자리를 지웠다. 시간을 도려낸 듯, 마치 오랜 꿈을 꾼 것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첫 이틀은 열 시간이 넘게 어지러운 꿈 속으로 빠져들었다. 


엄두가 나지 않아
하염없이 미루던 일을 꺼냈다.


엄두가 나지 않아 하염없이 미루던 일을 하나 둘 꺼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종신보험을 들었다. 이제는 실패로 인해 잃게 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받아들였다. 삶의 태도가 바뀌는 지점이 왔음을 인정했다. 늙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잃을 것 없는 젊음의 혈기로 살 시기도 지났다. 이제는 조금씩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할 때임을 받아들이자 편안해졌다. 그리고 두려웠다, 또 수긍하게 된다. 가장 공평하고 흔한 것. 오고야 말 것.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오래도록 보관하던 그림을 꺼내어 일산의 작가 아틀리에를 찾았다. 천경자 화백의 수제자로 유명한, 이제는 여든을 넘어선 원로작가 이숙자 화백의 초기 작품이다. 그림 한 귀퉁이에 적힌 화가의 서명 외에 그림이 진짜임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아주 오래전, 내게 이 그림을 준 사람이 작가에게 직접 선물 받은 작품이기에 진품임을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으나, 언젠가 세상의 인정이 필요해질 때를 대비해 진품임을 증명하는 인증서를 부탁했다. 아틀리에를 관리하는 실장이 며칠간 작품을 보관해도 되느냐 물었다.


일주일이 지나 진품임을 인증하는 작품카드를 발급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화가의 홈페이지 한 구석 작품 목록에도 그 그림 사진이 곧 추가될 것이다. 오래도록 나의 어두운 시간을 위로해 주던, 나만의 것이던 그 그림이 세상 밖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그 그림이 낯설어지고 말았다. 그림에 깃든 영혼이 바뀐 것만 같다. 나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위로해 주던 그림이었다. 사진으로 담겨 무수히 많은 모니터에 떠오를, 그 그림은 더 이상 나만의 작은 위로가 아니게 되었다. 


고여있던 나의 시간이 다시 흐른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일이 참 잘 된 일이라고. 옳은 방향으로 다시 흘러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고여있던 나의 시간이 흐른다. 나의 시간은 스물다섯에서 멈춰 있었다. 벌써 십오 년이 넘게 지났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기 한 달 전에 찾아간 회사는 그 새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나와 함께 협력하여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이미 회사에 남아있지 않았다. 회사에서 내가 바꾸었던 모든 일들도 마치 지우개로 지운 듯 지워져 있었다. 내가 돌아갈 나의 팀은 더 이상 회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는 파도다.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호기롭게 달려들어 물러날 곳에 다 달아 작은 포말과 함께 흩어진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될 것을,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문을 열면 입김이 새어 나온다. 품에 안겨 떨어질 줄 모르던 딸의 온기가 오래된 추억처럼 가슴에 남는다. 꿈속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아내는 하하 웃으며 어둠 속에서 딸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뭉툭, 아내의 배 위에 올려놓은 손바닥에 둘째의 발길질이 날아온다. 어느새 아내는 임신 중기를 지나고 있다. 


시간이 흘렀다. 겨울이 오고 있다. 

가을이 끝나기 전에, 나는 조금 더 

내게 주어진 것들을 사랑하자고 생각했다.



2024년 11월 13일 새벽.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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