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을 마무리하며
"브런치 한 번 해봐요.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거예요."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던 조카가 말했다.
어쩌면 깊은 고민을 거쳐 해준 이야기일 수도,
아니면 지나가듯 무심코 던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쳇바퀴 도는 듯한 직장 생활에 찌들어 있던 내게
그렇게 던져진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여운이 짙은 파동을 남겼다.
펜을 마지막으로 잡았던 것이 언제였더라?
어떤 이유였건, 조언을 던져준 조카에게 감사의 마음을 거듭 전한다.
펜을 다시 손에 쥔 그 순간부터, 나의 시간은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를 썼고, 그 무렵부터 나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5년 한 문학 월간지의 신인문학상을 받고 깨달았던 것은,
나의 글로 배를 불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게 글 이외에도 "생활"을 위한 무엇인가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
자랑스러운 아들, 든든한 남편, 믿음직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넘어 보편타당한 수준의 유형적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사"라는 커리어를 잡기까지 무려 9년이 걸렸다.
그 사이의 모든 하루는 고민의 연속이었고 헤맴의 순간이었다.
길을 찾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이 이야기가 부끄러운 까닭은, 그 노력이 현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했어야 할, 인생의 큰 줄기를 그리지 않은 채 하루하루 주어진 것에만 매진했다.
방향 설정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9년이라는 시간을 썼다.
안타까운 나의 20대여.
하지만 후회가 남지는 않았다.
그 모든 순간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배웠고,
그 배움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빛을 발했다.
더러는 업무의 성과로 나타났고, 소통의 과정에 중요한 양념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은 앞으로 내 삶 깊은 곳에서 숙성되어갈 것이다.
진하게, 깊이 있는 향을 품으며.
결국 나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의 이름은 곧 자랑스러운 아들, 든든한 남편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 몇 번이나 될까?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 와이프의 출퇴근용 차를 일시불로 구매했을 때?
결혼기념일에 값비싼 호텔의 레스토랑을 당당히 예약할 수 있을 때?
기쁨은 잠시고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갔다.
숫자가 주는 만족은 길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나를 점점 좀먹어갔다.
입사의 기쁨이 일상이라는 파도에 쓸려 지워져 가면서, 나는 더 이상 펜을 쥐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브런치를 통해 글을 연재하면서, 내 안에서 다시 무엇인가 뜨겁게 꿈틀거리는 덩어리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덩어리에 어떤 이름을 붙여줘야 할까... 열정? 꿈? 비전? 생동하는 이 거친 숨소리에 어울리는 이름이 없을까.
나는 이 녀석을 "더 나은 내일"이라 부르기로 했다.
나의 길은 아직 무한히 열려있으며, 뻔히 보이는, "평범"이란 환상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은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어서,
멈춰있던 지난 몇 년간 나는 천천히 침하하고 퇴적되어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글을 쓰면서 댓글을 통해 숨어있는 불꽃들을 만났다. 좌절한 불꽃도 있었고, 악에 받친 불꽃도 있었다.
그 속에 나를 투영하고, 나 속에 그들을 투영해본다. 모두 한 길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괜찮다.
부딪치고 깨져도 일어나 걸을 수만 있다면.
이 말을 그들에게 하고 있지만,
정작 이 말을 가장 원한 것은 내가 아닌가 싶었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작은 불꽃에 불과하다.
그래서,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기본을 단단히 다져라"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러지 못해 많이 방황했기 때문이다.
얼핏 빨라 보이는 길이 멀리 보면 결코 빠르지 않음을, 막 타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모른다.
20대의 불꽃은 뜨겁지만, 그만큼 땔감을 많이 먹는다. 장작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어느새 훅 하고 꺼지게 된다.
그러니, 안달하지 말기를.
비참하고 힘든 것 같은 오늘도 10년 후에는 반드시 그리워할 예쁜 수채화가 되어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방향을 잡고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새 길은 열려있을 것이다.
이 또한 당신을 빌어 나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이다.
연재를 시작하고 약 6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꽤 많은 것이 변했다.
연재글의 배경이 되는 회사는 이제 "전 애인"이 되었고,
나는 꽤 긴 시간을 백수로 보냈다.
그리고 이제 꿈에 그리던 "내 책"을 출간하기 위한 준비가 끝나가고,
한 스타트업 회사의 인사총괄이 될 예정이며,
또 다른 어느 회사의 자문위원이 되었고,
올여름부터는 출강을 나가게 되었다.
흐르는 시간의 물살 위로 오르니, 썩어가던 살들이 떨어져 나가고 새 살이 돋아남을 느낀다.
돌아올 봄이 머지않았다.
때로는 이렇게 멈춰서는 시간이 생기게 된다.
그럴 때면 잠시 멈춰 방향을 짚어보길 바란다.
성급하게 화력만 더 키우면 갈 곳 모르는 불길이 주변과 나를 태워나갈 뿐이다.
나아갈 길을 보고, 연탄에 묻힌 불꽃처럼 진득하게 태워나갈 필요가 있다.
당장 눈 앞의 장애물 너머를 보는, 그런 혜안을 가지고
당신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모두의 앞날에 기쁨이 오기를 바란다.
나의 글들이 그 기쁨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언젠가 한 길 위에서 당신과 마주치는 그 순간을 기대한다.
2017년 2월 1일
Kyl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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