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정작 지원할 때는 전혀 와닿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
※ 본 글은 상담 관련 전공(Counseling Psychology; 이하 CP, Counselor Education; 이하 CE)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미국에 온 지 한 달 반, 개강 4주차. 글로 이루 다 옮길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이 죽 이어지는 가운데, 매일매일 ‘업 앤 다운’을 경험하며 어찌저찌 살아내고 있다. 이제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되찾은 데에 감사를 느끼며, 유학 준비에 대한 연재를 이어가기 전 미국에 온 뒤에야 깨닫게 된 것들에 대해 살짝 나누고자 한다.
대학원 유학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프로그램 선정과 관련된 질문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학교 랭킹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어느 프로그램에 있는 교수와 연구 핏이 잘 맞는데 학교 랭킹이 너무 낮다느니, 학교 랭킹이 너무 높은 프로그램만 쓰지 말고 낮은 프로그램도 골고루 쓰라느니… 십수 년간 정량적 지표에 민감해지도록 교육받아온 한국인으로서 학교 랭킹의 덫에 갇히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리라.
나 역시 그랬다. 유일하게 대학원 랭킹을 따로 제공하는 USNews 랭킹을 수시로 확인하며, 상위권에 있는 프로그램부터 줄 세우듯 원서를 넣었다. 상담 관련 프로그램 랭킹은 Student Counseling and Personnel Services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CP, CE를 불문하고 각 학교의 학장(dean)에게 설문을 돌려 해당 분야에서 유명하다고 생각되는 학교를 15개까지 지명하게 한 후 많이 지명된 순으로 나열한 결과란다. (랭킹 선정 방식은 여기에 자세히 나와 있다) 퍽이나 객관적인 선정 방식이다.
랭킹이 곧 커리어와 직결되는 분야도 있기야 하겠으나, 상담 관련 분야에는 인준(accreditation)이라는 특수한 질 관리 절차로 인해 각 프로그램의 질이 사실상 평준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APA 인준과 관련된 일을 도우며 알게 된 사실인데, 인준 위원회에서 가르쳐야 할 과목과 들어야 할 학점까지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보니 각 프로그램의 특성이 교육과정에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을 정도란다.
무엇보다 학교 랭킹은 대학원생이자 (어쩌면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인) 영어가 서툰 유학생, 신진 연구자/실무자로서 살아가야 할 삶에 아무런 도움도, 영향도 주지 않는다. 랭킹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여러 요소가 유학생으로 살아남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랭킹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짙게 남는다.
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면, 미국에서의 안전 개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동네마다, 심지어는 같은 도시 안이더라도 특정 구역/블럭마다 그 분위기가 천차만별로 다르다. 대도시든, 시골이든, 위험한 곳은 정말로 위험하고, 한국과 달리 밤에 밖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지역이 대다수다.
잠깐 놀러왔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면 그만인 여행자 입장에서야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좋든 싫든 최소 3년 이상 그 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유학생에게 안전은 매 순간 피부로 와닿는 중대한 이슈가 된다. 학교 캠퍼스는 그나마 치안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하나, 매일같이 범죄 알림이 메일로 날아드는 학교와 밤에 걸어다녀도 별 문제가 없는 학교 사이의 간극을 경험하지 않고 알긴 어려울 것이다.
확인하는 방법
해당 프로그램의 유학생, 가능하다면 동양인 유학생에게 학교가 위치한 동네가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묻기
밤에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한지, 학교 근처에 우범 지역/위험 구역이 있는지, 학교에서 범죄 알림이 얼마나 자주 오는지 묻기
프로그램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비슷하다 할지라도, 프로그램 전반을 관통하는 분위기는 프로그램마다 꽤나 다르다. 학생 간 협력을 강조하며 여러 시도와 모험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학생 간 경쟁을 은근히 부추겨 서로 반목하게 만들고, 심지어 학생의 성과에 따라 패널티를 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영어가 서툰 유학생이 후자에 가게 될 경우 1순위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된다. 물론 개중에는 독하게 살아남아 내국인 학생보다 더한 성과를 내며 독기 어린 육식동물로 성장하는 경우 또한 있겠지만… 다른 분야도 아니고 사람의 심리적 안녕과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는 상담 분야에서 그렇게 살아남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비단 경쟁이 아니어도, 낯선 환경에서 영어가 서툰 유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팍팍하고 힘든 일이다. 코호트, 선배, 지도교수, 프로그램으로부터 주어지는 배려와 지원이 그나마 이 생활을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는데,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는 저마다 각자도생하기 바빠 이것조차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다. 지금으로서는 경쟁적 분위기 속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지만, 지원할 당시에는 이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게 웃플 따름이다.
확인하는 방법
교수와의 상호작용, 인터뷰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민감하게 체크하기 (red flag 예: 인터뷰가 너무 빡빡하다/소진적이다, 교수가 너무 성과중심적이다, 학생들 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등)
해당 프로그램의 학생에게 프로그램 안에서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지, 학생들 간 분위기는 어떤지 묻기
프로그램 안에서 유학생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잘 관찰하기 (red flag 예: 내국인 학생‘만’ 말을 많이 하고 유학생은 잠자코 가만히 있다 등)
(APA 프로그램인 경우) Student Admissions, Outcomes, and Other Data 중 attrition 수 확인하기 (높을수록 중도 포기자가 많은 것으로 해당 프로그램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함)
F-1 비자를 받고 온 유학생은 신분상 절대로 내국인 학생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없고, 이러한 신분상 차이는 유학생의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떤 프로그램은 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유학생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여러 이슈를 존중하고 배려할 정도로 유학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반면, 어떤 프로그램은 유학생 본인이 유학생에게만 작용하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설득하고, 요구하고, 협상해야 할 만큼 유학생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하기도 하다. 놀랍게도 그런 프로그램 중에는 랭킹이 의외로 높은 경우가 더러 있는데, 랭킹 기준의 대부분이 내국인 학생에게 중요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랭킹이 유학생에게 더더욱 무쓸모한 이유…)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받는 내국인 취급을 당연시하며 살아왔다면, 미국에서 유학생 취급을 받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다. OPT/CPT가 뭔지도 몰랐고, 장학금 수혜 여부에 내국인 제한이 있다는 것도 몰랐으며, 향후 취업을 하는 데에 비자가 이렇게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도 전혀 몰랐으니까. 유학생 신분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세세하고 광범위하기에, 이를 말로 하나하나 설명할 재간이 없을 정도다.
확인하는 방법
프로그램 핸드북에 유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나와 있는지 확인하기 (international과 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면 쉽게 살펴볼 수 있음)
프로그램 안에 유학생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유학생 출신 교수가 있는지 확인하기
프로그램이 유학생 지원자의 입장을 잘 배려하는지 확인하기 (예: 시차, 온라인 인터뷰, 서류 제출 등)
교수(특히 희망 지도교수)에게 유학생의 언어적 장벽(language barrier)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는지, 프로그램 안에서 유학생에 대한 지원이 따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유학생의 신분상 취약성(예: 캠퍼스 안에서만 일할 수 있음 등)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기
TA가 필수적인 경우 영어가 서툰 유학생에게도 TA 기회가 잘 주어지는지, 유학생이 TA를 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확인하기
미국은 지역에 따라 렌트도, 물가도 천차만별이다. 캠퍼스 타운이라고 렌트가 꼭 싸다는 법도 없으며, 받을 수 있는 생활비의 양이 제한적이라 생활 물가가 곧 삶의 질을 좌우하게 된다. 생활비(stipend)로 30,000 달러 이상을 받는 곳이어도 렌트가 한 달에 2,000 달러 이상이라면, 대부분의 생활비를 렌트로 쓸 수밖에 없어 한국이라도 오가게 될 경우 생각 이상으로 큰 지출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반면 생활비로 20,000 달러밖에 받지 못하더라도 렌트가 한 달에 1,000달러 이하라면, 렌트를 내고도 꽤 많은 돈이 남기에 경제적으로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차량 이용 여부 또한 생활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국의 자동차 보험료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비싸며, 주차비 또한 학교마다, 집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학교는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시피한 탓에 차량이 없으면 통학이 불가능할 정도지만, 어떤 학교는 대중교통이 잘 자리 잡혀 있어 차가 없어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기도 하다. CP든 CE든 꼭 해야 하는 실습(practicum)을 할 때도, 실습처가 캠퍼스와 멀찍이 떨어져 있어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다들 미국에 가면 당연히 차량을 사야 할 것처럼 쉽게 이야기하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중고차 가격이 수직상승한 탓에 당장 차량을 사기 어려울 가능성 또한 존재하므로 이에 대해 미리 고려해두는 것이 좋겠다.
확인하는 방법
해당 프로그램의 학생에게 생활비가 사는 데에 충분하다고 느껴지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룸메와 같이 사는지, 렌트가 어느 정도인지, 장 보는 데 드는 돈은 얼마인지, 차가 꼭 필요한지 등) 직접 물어보기
미국에서 생활할 때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미리 고려하기 (예: 룸메와 같이 살 수 없음/같이 살아도 됨, 차량은 없어도 됨/꼭 있어야 함, 외식을 꼭 해야 함/안 해도 됨, 요리하는 것을 즐김/가급적 안 하고 싶음 등)
생활비가 몇 개월 단위로 주어지는지 확인하기 (9개월/10개월인 경우 방학 기간에는 생활비가 주어지지 않으므로 summer funding을 따로 구하거나 이를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가 돈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렌트를 내야 할 수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