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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Nov 11. 2019

내 고향 주소는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내 고향은 부산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19년을 살고 스무 살 때 대학을 가면서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사를 왔다.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이 내 고향 주소다. 어린 시절, 이사를 많이 다녀 어디가 딱히 고향이라고 말하기 뭐하다는 친구들도 있는 걸 보면 태어난 동네에서 19년을 살았고 내 고향을 정확히 어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나름 행운이다. 부산에서 열아홉 살 때 서울로 이사를 왔고 결혼을 하면서 대전에서 신혼 생활을 했다. 큰 아이를 낳고나서 다시 서울 상도동으로 이사를 했고 그 다음은 둘째를 낳은 뒤 구기동에서 5년을 살았다. 그 다음에 신림동에서 2년. 지금 살고 있는 수원은 신림동에서 넘어왔다. 그러고 보면 태어나 19년은 한 자리에서 얌전히 살다가 결혼 이후에는 신나게 이사를 다닌 셈이다.     


사실 내가 하려던 이야기는 이사에 대한 건 아니고 이번에 지리산을 거쳐 내 고향 부산에 갔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수원에서 차를 타고 4시간 정도면 충분히 가 닿을 수 있는 이곳을 나는 20여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한 셈이다. 내가 기억하는 이 동네는 큰 골목길을 나와 우측으로 꺾어지면 별거별거 다 파는 큰 재래시장이 있었다. 거기 시장 안에 동대신동 성당이 있었고 그 밑으로 화랑약국과 화랑국민학교가 있었다. 내가 3학년 때 까지 다녔던 학교다. 4학년 올라가면서 길 건너 삼익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큰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이사를 온 거라 사실은 동네에서 동네로 옮긴 셈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내가 뛰어 놀던 동네는 골목골목 따닥따닥 집들이 붙어있고 한 집 건너 친구들이 살았다. 현송이, 오정이, 숙이, 창수... 이렇게. 그 친구들이 살던 집은 빌라로도 바뀌고 어린이집으로도 바뀌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살던 집은 마당이 좁아지고 집을 크게 만들어 올려 조금 답답해 보였다. 와... 여기야. 여기가 내가 살던 그 집이야. 라고 말하며 뱅뱅 돌아가며 보고 또 보고 사진을 찍었다.     


이맘 때였던 거 같다. 여름 날 밤이었고 저녁밥을 먹은 뒤 나는 수박을 와삭와삭 베어 물며 씨를 퉤퉤 뱉고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까까머리 오빠가 안방 창문을 열더니 갑자기 마이크에다 대고 동네 사람들이 다 들을 만큼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동네 여러 부운. 오늘은 누구누구 집에서 임시 반상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8시까지 한 분도 빠짐없이 누구누구 집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장난을 쳤다. 우리 집만 가지 않으면 혹시 자기가 장난친 게 들통 날 수 있다고 엄마까지 등 떠밀어 보내던 오빠의 장난스런 표정과 목소리가 어제처럼 생각난다. 

음악을 좋아하던 아빠가 전축에다 엘피판을 틀어놓고 마당에 길게 고무호수를 끌어내어 물청소를 하던 소리. 작은 연못 둘레에 있던 큰 돌에는 비둘기가 날아와 앉아 구구 거리며 놀던 모습. 학교 다녀와 책가방만 마루위에 퉁탕 던져놓고 뛰어나갈 때 철제 대문에서 나던 끼이잉 철컹 소리와 저녁이면 부엌에서 모락모락 풍겨나던 된장찌개 냄새까지....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생각이 나는 걸까. 마치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제 막 어린 시절로 시간 여행을 온 사람처럼 그 집 앞에 서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내 기억 속에 있던 넓디넓은 골목은 어느새 깜짝 놀랄 정도로 좁아져버렸다는 거다.      


4학년에 올라가면서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로 기억하는데 지금 보니 겨우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가다보니 동네 초입에 내가 태어났던 그 옛날 <평화 산부인과> 간판이 떠억 보이는 거다. 꺅~~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있는 거지? 반갑고 신기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다가 더 크게 벌어진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삼익 제과점>을 발견했다. 저게 설마 내가 알던 그 삼익제과가 맞나? 와 미쳤다. 그 삼익제과가 맞다. 문을 열고 추억 속으로 들어간다. 주인아줌마가 보인다. 와 미쳤다. 그때 그 젊었던 아줌마가 젊은 할머니가 되어 있다. 주인도 그대로 빵들도 옛날 빵 그대로다. 옛날 아이스케끼와 옛날 소보로까지. 마치 나를 위해 아직까지 그 모습 그대로 있어준 것처럼 반갑고 고맙다. 빵을 너무 좋아해서 울다가도 빵만 사주면 울음을 뚝 그치던 어린 시절 양미는 이제 이렇게 나이 들어 빵 보다 돈을 더 좋아하는 속물이 되어 돌아왔다.   

  


승강기도 없고 5충이 다인 동대신동 삼익아파트. 어쩜 이 아파트까지 내가 살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건재하고 있었다. 달라진 거라곤 아파트 사이에 우거진 벚나무들이 더욱 굵고 울창해졌다는 거. 살색 아파트에서 흰색 아파트로 변했다는 거. 아파트 뒤편으로 돌아가 보았다. 친구들과 살구받기(공기놀이)하며 놀던 마당도 밤늦도록 뛰어다니며 놀던 흙길도, 비밀의 화원(내가 비밀의 화원이라는 책을 읽고 이름을 갖다 붙였던 곳)도 그대로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내가 살던 아파트 동에 들어가 계단을 밟아 본다. 올라갈 땐 두 칸씩 올라가고 내려올 땐 세 칸씩 계단을 내려와 마지막 다섯 칸은 한꺼번에 뛰어내렸다. 그때의 난 나풀나풀 계집애였는데 이젠 무릎이 아픈 나이가 되어 다시 그 계단을 밟아본다. 아파트를 벗어나며 나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빠져나오는 것만 같아 자꾸 자꾸 뒤돌아본다. 고개를 돌렸다 다시 보면 모두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리고 없을 것만 같아서...     



다음은 내가 살던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보수동 책방 골목을 찾아 가본다. 어린 시절 틈만 나면 친구들과 걸어가서 한참을 놀다오던 보수동 헌책방 골목. 그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쪼그려 앉아 책을 읽던 양미는 어디까지 갔다가 돌아온 걸까. 사는 것도 여행이라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제 겨우 돌아와 옛날 그곳에 서있다. 헌책방 골목에 있는 찻집에 앉아 뭐라도 하나 써보겠다고 끄적이다 시 비슷한 글 하나를 메모장에 적어왔다. 하루도 다 채우지 못 할 만큼 짧은 고향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며 사진을 찍듯 뭐 하나 남기고 싶었었나 보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때의 내 마음이라 여기다 옮겨 적어 본다. 잘 있어. 또 올게. 그게 언제라고 말 할 수 없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안녕, 내 고향.     



헌책방     


세월의 무게가 쌓인 골목

누렇고 빛바랜 종이뭉치들이

한여름 더위를 품고 헐떡인다     

낡은 책 사이사이

책갈피처럼 추억이 꽂힌 책들로

탑을 쌓아올린 이곳에서     

천천히 석탑을 돌 듯

골목 사이사이를 누빈다     

무얼 찾고 싶었던 걸까     

어린시절

이곳 보수동 골목에서

<15소년 표류기>를 뽑아들고

헌책방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해가 다 지도록 그 속에 빠져있던     

날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헌책방 구석에

그 옛날 내가 꽂아둔

추억 한 권 되사오고 싶어     

하루가 다가도록

이곳을 서성이며

걷고 있었나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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