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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Nov 12. 2019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누군가로 부터 <여기 들어와도 좋아> 라고 초대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나 이번 경우는 더더욱이나 그랬다. 우연한 기회에 기대없이 응모했던 수업이었다. <될 리가 있나> 였던 마음이 <될 수도 있어> 로 바뀌었다가 <안 되면 어쩌지> 라는 조바심의 시간으로 이어지던 중에 받게 된 고마운 소식이었다.

사실 나에겐 뭔가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늘 똑같은 일상에서 해가 뜨고 지듯 내 인생도 무한 반복 중이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았던 나는 어느새 꿈 따위와는 멀어져 먹고 싶은 것만 밝히는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글 쓰는 능력은 안 되어도 책 읽기는 좋아했고 시나리오 쓰는 재능은 없지만 좋은 영화들은 죄다 보고다니며 영화 발전에 조금이나마 돈을 보탰다. 하지만 그게 뭐. 그게 다였다. 인간에게 최대 거름이자 재산은 주어진 환경이라는데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거름이 아니라 그냥 똥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늘어진 면티마냥 날강날강 낡고 편해서 뭐 달리 다른 것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의 끝은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는 걸로 만족했다. 그래 이 정도 살면 됐지 뭐.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별난 두 아들. 아니 남편까지 셋이구나. 키워내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온 것만도 용한거야. 지금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어.


그랬던 어느날. 날아가던 파리가 유리창에 틱 하고 부딪히듯 그렇게 우연히 보게 된 글이었다.
 

'이외수 작가님이 문학연수생을 뽑으신다네. 아.. 저런 것도 있구나. 하면 재밌겠네. 그렇긴 하겠지. 음.. 근데 저녁은 뭘 먹지?'


집 밖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마트가 아닌 동네 문구점에서 편지지와 봉투를 고르고 있었다. 그냥 사 보는 거지 뭐. 쓸 건 아니야. 사 놓고 안 하는 게 안 사고 못 하는 거 보다는 덜 억울하잖아.
그런데 이외수 작가님은 무슨 색의 편지지를 좋아 하시려나. 보라색은 너무 우울한가. 그래도 난 바이올렛 색이 좋아. 지금 써서 부치면 늦지는 않겠지? 아.. 뭔대? 안 쓰기로 했잖아. 잔잔한 너의 일상에 풍파를 만들지 마. 도대체 거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가겠다는 거냐고??
 

아 몰랑~~~~~~


이렇게 나는 나와의 싸움 끝에 작가님께 보라색 편지를 기어이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한통의 이메일이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이곳에 와도 된다고, 너를 정식으로 초대하겠다고 말이다. 이메일을 받고 한 동안 멍 하게 앉아 있었다. 뭐야? 내가 지금 내 일상을 조금 비틀어 버렸잖아. 어떤 여파가 나에게 닥칠런지 생각해야만 했다. 괜히 뭔가를 시작하겠다고 나에게 기대와 빌미를 주어서 근근히 적응하고 사는 나의 미친 근성을 건드린 건 아닐까. 이러다 정말 어제의 나와 결별하고 새로운 나를 찾아 휘딱 떠났다가 쑥대머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삶던 행주를 두번이나 태워 먹었고 잠도 설쳤으며 씻던 쌀이 씽크대 거름망 속에 얌전히 쌓여있기도 했다. 일본까지 가서 탈원전 시위하며 돌아다니고 있는 남편에게 <나 어떡하지?> 물어본다고 뭐 현명한 답이 나올 거 같지도 않았다.
첫째는 지 하고싶은 것만 하고사는 놈이라 상담의 객체가 될 수 없고 둘째는 고3인데 지 코가 석자였다. 패션디자인과에 가겠다며 옷만 열심히 사입는 놈인지라 엄마의 고민을 새로나온 운동화 밑창으로도 여기지 않을 놈이다.

 

"그냥 해. 무조건 해. 생각이라는 걸 하지마."


남편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운 조언을 했다.
옆에서 듣고있던 아들들이 거들었다.


"그냥 해요. 우린 다 컸잖아. 엄마인생 이젠 막 살아."


걔들 다운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조언이 나에게 얼마만큼의 힘이 되었다. 남편은 항상 나에게 미안했다며 지금이라도 니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모습 보고싶다고 입에 침을 발라가며 말했다. 아들들 또한 엄마가 집에 있으나 없으나 거의 차이가 없다고 했다. 암튼 뭐 이런 등떠밈도 있고해서 미약한 시작이긴 하지만 그냥 해 보기로 한 거다.

수업 첫날. 강원도 화천에 있는 <모월당>에 도착해보니 내 이름표가 선생님의 코 밑. 제일 앞자리. 그것도 정 중앙의 방석위에 똭!! 놓여있었다. 어려서부터 팬이었던 이외수 작가님의 콧구멍을 올려다보며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다니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봐도 꿈만 같았고 내일 다시 생각해도 아마 꿈만 같으리라.

인생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저질렀고 시작했으며 노력할 것이고 끝을 볼 것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나 말이다.

 

"포기하지 말라. 절망의 이빨에 심장를 물어 뜯겨 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절망을 접어둔 채 그냥 전진해 보기로 했다. 아무쪼록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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