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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Nov 12. 2019

훈련소에서 온 편지


지난 9월 말. 군대 훈련소에 들어간 둘째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처음 온 편지>     


충성 21x 훈련병 OOO     

엄마 아빠 잘 지내고 계시지요? 

저는 아직까진 크게 힘든 훈련이 없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소대 사람들도 전부 좋은 사람들 같아요. 그런데 나이들이 다 너무 많아 여기서도 저는 막내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오던 첫날. 생각보다 당황도 많이 하고 위축돼서 2일 째였나 3일 째였나 그냥 나와 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런데 3일 째 되던 날, 성당에 갔다가 엄마 아빠가 써준 편지하고 몽쉘 2개, 콜라 하나를 받았어요.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든데 태어나 그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본 것 같아요. 이것만 마음껏 먹을 수 있다면 군대 생활도 힘들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다른 건 힘들어도 참으면 되는데 배고픈 게 사실 너무 힘들었거든요. 살면서 이렇게 심한 식욕을 느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예요. 며칠 전에는 <군대리아>가 나왔는데 진짜 울면서 먹었어요. 너무 맛있어서. 

애들이 나보고 거지같이 먹지 말라는데 진짜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고 적량 배식이라고 많이 주지도 않아서 매일 내 배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를 들으며 처량하게 밥시간만 기다리며 살고 있어요. 수료식 날 오실 때 맛있는 거 엄청 많이 싸가지고 와주세요. 소고기도 먹고 싶고 새우도 먹고 싶고 샐러드도 먹고 싶고...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얼마 전 배식에 오징어볶음이 나왔는데 진짜 너무 맛있어서 그걸 실컷 먹을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수료식 때 오징어 볶음을 꼭 좀 해다 주세요. 실컷 먹어보게요. 


여기 논산 훈련소는 땅이 무척 넓은 데에 비해 주변에 산도 없고 건물도 없어서 보이는 하늘이 너무 넓어 보여요. 특히 저녁 먹고 나오면서 보는 하늘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워요. 살면서 가장 답답한 곳에 들어와 있는 이 순간에 가장 넓고 아름다운 하늘을 보게 된 게 조금 우습기도 해요. 할 말이 엄청 많았던 거 같은데 막상 쓰려니까 배고프단 얘기밖에 안 나오네요. 그렇다고 너무 걱정 하진 마시고 시간 날 땐 가끔 편지도 써주세요. 힘내라고.

아무튼 저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을 테니까 걱정은 1도 하지 마시길. 훈련소 그까이 거 후딱 끝내고 나갈라니까 엄마 아빠는 애들처럼 둘이 싸우지 말고 잘 지내고 계세요. 할머니한테도 안부 꼭 전해주세요. 잘 지내고 있다고. 그럼 나중에 봬요. 필승!!! 아들 올림.     


<훈련 4주차에 보내온 편지>     


충성 21x 훈련병 OOO     

어느덧 4주차가 되었어요. 죽어도 안갈 거 같던 훈련소 시간도 가긴 가네요. 훈련소 생활도 많이 적응됐고 훈련도 전부 잘 받고 있으니까 걱정은 당연히 안하셔도 됩니다. 저번 주에 있었던 첫 영점 사격에서 9발 중에 8발을 맞춰서 첫 시도에 합격했어요. 편지에 넣어서 보내려고 표적지를 뜯어왔는데 아쉽게도 가져가버렸어요. 기록 사격도 잘 합격했고 남은 훈련들도 별 어려움 없이 다 잘 받을 거 같아요. 

그런데 여기 있다 보니까 왠지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핸드폰이 없으니 마치 무인도에 던져진 느낌..) 시간 날 땐 책도 좀 읽으려고 해요. 시집이 생각보다 재밌어서 나중에 나가면 좀 더 많이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여기에선 밖에 있을 때보다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예전엔 뭔가 붕 떠있었다면 여기선 차분해졌다고 해야 하나. 

나태주 시인의 <멀리서 빈다>를 정말 감명 깊게 읽었어요. 배울 게 별로 없어 보이는 이곳에서 결핍의 다른 의미를 배우고 있고 평소엔 몰랐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해요. 나름 가져가는 게 있다고 보지만 그래도 군대는 군대네요. 밖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너무 궁금한데 여기서 우리가 내다볼 수 있는 건 내일의 날짜정도 뿐이니...

얼마 전에 알게 된 건데 가수 설리가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어요. 내가 좋아한 사람이든 아니든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은 너무 우울해요. 기분이 가라앉고 뭔가 채한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져요. 더 이상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엄마 아빠 편지는 잘 받고 있고 덕분에 힘내고 있어요. 고양이 사진도 잘 보고 할머니 사진도 잘 봤어요. 할머니께 저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꼭 전해주세요. 그리고 통화시간이 너무 짧아 아빠한테는 전화 길게 못한 거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구요. 수료식 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친구들 만나서 실컷 떠들고 싶어요. 남아있는 시간이 후딱 가길 바라며 수료식 날 뵈어요. 충성!!!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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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가야되는데 빨리 다녀와야지 어쩔 거야.”

군대를 가기 전 둘이서 떠난 여행에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피할 수 없는 매라면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식의 체념이었다. 한창 자유롭게 망아지처럼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싶은 나이에 폐쇄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울타리 속에다 자신을 가두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비오는 날 장화를 신고 흙탕물을 첨벙첨벙 건너며 겁 없이 놀던 아이는 이제 군화를 신고 흙탕물을 저벅저벅 건너 메마른 행군을 해야 한다. 자신 있게 발을 탕탕 구르며 세상을 만만하게 보았던 아이는 질서와 규율로만 돌아가는 결코 만만하지 못한 세상을 만나게 됐다. 하지만 이 나라에 태어난 이상 피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국방의 의무>. 그 매듭을 풀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 싫으나 좋으나 그 시간을 버티고 통과해 낼 수밖에 없다.      


편지를 받을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이는 그 안에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는 듯하다. 배가 고프고 춥고 아프고 우울한 기분들이 아이를 훑고 지나가게 될 거다. 봄에는 봄대로 여름에는 여름대로 가을에는 가을대로 그리고 겨울에는 혹독한 겨울대로. 그렇게 온갖 바람이 아이를 스치거나 흔들고 지나가고 나면 그 이전의 세상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전과 이후.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지길 바랄 뿐이다.      


오늘 아이는 드디어 5주간의 힘든 훈련을 마쳤다.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 마음이 설렌다. 밝고 건강한 모습이면 제일 좋겠다. 그것 밖에 엄마는 아무 것도 바랄 게 없다. 레알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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